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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리뷰]방송인이자 역사학자인 정재환의 '나라말이 사라진 날'

"그때, 그들에게 한글은 목숨이었다"
독립운동으로서의 한글운동을 이야기하다
일제치하 조선어학회의 사전 편찬을 위한 고군분투 그려

자연스럽게 배우고 익혀 당연하게 사용하는 지금의 우리말과 우리글이 ‘우리의 것’일 수 없었던 시대. 그 시대를 살던 여학생 영희의 일기장에는 ‘오늘 국어를 썼다가 선생님한테 단단히 꾸지람을 들었다’고 적혀 있었다. 


영희가 말한 국어는 우리말인 ‘조선어’였고, 당시의 국어는 ‘일본어’였다. 영희가 살던 시대, 일제강점기는 그야말로 ‘나라말이 사라진 시대’였다.


방송인이자 역사학자인 정재환 한글문화연대공동대표가 펴낸 ‘나라말이 사라진 날(생각정원)’은 암울했던 역사 속 우리말과 우리글이 어떻게 ‘우리의 것’으로 남게 됐는지에 대한 내용을 상세하게 전달한다. 

 


이 책을 통해 독자는 일제 치하에서 우리말글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조선어학회의 활동과 독립운동으로서의 한글운동을 살펴볼 수 있다. 

 

저자는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조선어학회 사건은 교과서에도 나오는 중요한 사건이지만 사건의 전모는 역사나 언어에 관심 있는 소수만이 알고 있는 형편”이라며 “조선어학회 사건을 되짚는 일은 또 다른 형태의 독립운동과 마주하는 경험이자 우리 말과 글이 만들어지고 성장해온 과정을 목격하는 소중한 기회”라고 강조했다.


1장은 훈민정음 창제와 우리글이 ‘한글’이란 이름을 얻기까지의 과정, 일제에 나라말을 빼앗기게 된 상황에 대한 내용을 담았다. 


2장은 일제의 동화정책에 맞서 우리말글을 지키기 위해 사전을 편찬하고, 민족어 3대 규범을 만든 조선어학회의 활동을 그렸다. 


3장에서는 앞서 소개한 영희의 일기장 속 한 문장에서 비롯된 조선어학회사건의 전모를 밝혔다. 


마지막 4장에서는 해방 이후, 드디어 시작된 한글의 시대를 조명하면서 학회가 사전 편찬을 시작한 지 28년 만에 이룩한 감격적인 쾌거 ‘큰사전’에 대한 내용을 만날 수 있다.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역사적 사건들을 다뤘지만 딱딱하지 않게 풀어내 읽는 데 어려움이 전혀 없다. 


주시경의 ‘말모이(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편찬이 시도된 국어사전)’ 편찬 노력과 그 뜻을 이어받아 사전 편찬에 온 힘을 기울인 조선어학회의 열정, 나라를 일으키는 데 기꺼이 손을 건넨 많은 후원자들에 대한 이야기 모두 흥미롭다. 


사전에 들어갈 단어를 선택할 때의 에피소드에서는 웃음이 나왔고, 조선어학회사건 이후 학회 회원들이 고문을 당하는 장면에서는 실제 그 현장을 목격한 듯 울컥한 심정이 들었다.


최초의 철자법인 ‘한글 마춤법 통일안’의 띄어쓰기와 사이시옷, 두음법칙 등이 지금의 맞춤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됐다.    

 

 

특히 한국인이 가장 어려워한다는 ‘띄어쓰기’에 대해 “어법에 맞게 띄어쓰기를 정확히 한 글은 독자가 읽기에 쉽고 편하다. 그렇기에 띄어쓰기는 읽는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을 듬뿍 담아 만든 규범이다"라고 해석한 저자의 생각에 공감했다. 


또한 저자가 마지막 페이지에 남긴 “일제가 우리말글을 없애려고 할 때 한글은 목숨이었고, 지금 우리에게 한글은 희망이다”라는 메시지는 책장을 덮은 후에도 여운으로 남았다. 
 

한글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주는 이 책을 자신있게 권해 본다. 

 

[ 경기신문 = 박지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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