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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시론] 살 권리마저 차별받는 세상

이제는 ‘보이지 않는 따뜻한 손’이 필요하다

수도권의 아파트값 폭등으로 얼마 전까지 홍역을 앓아왔다. 현재 아파트 매매에 대한 폭등은 점차 안정화(?)되어가는 추세이나 이에 대한 부작용이라고 할까? 전세가격이 서울기준 68주째 끝없이 상승하고 있다. 집주인이 실거주한다고 전화 올까 봐 세입자가 전전긍긍하거나, 전셋집을 찾기 위해 공인중개사에 성공보수도 제안하는 등 웃지 못할 진풍경 사태가 벌어지고 있어 지난 국토교통부 국감에서 김현미 장관은 전세시장 혼란에 대해 아파트 가격 폭등 이후 또다시 전세대란에 대해 송구하다는 반응을 내비쳤다. 서민들의 입장에서 이제는 집 한 채 마련하는 것은 고사하고, 살 권리마저 빈부의 격차로 벼랑 끝에 내몰리게 된 상황인 것이다. 우리가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어두운 그림자 일 수밖에 없다.

 

우리 모두는 의심의 여지 없이 자본주의 시스템에 살고 있다. 현재의 금융자본주의 시대는 시장의 기능이 정부의 통제력보다 강하다 보니 이 시스템에서는 당연히 시장의 역할인 수요, 공급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고, 부를 쟁취하는 것도 기회는 공평하게 가지되 쟁취하는 방법과 능력에 따라 차등적으로 부를 쟁취하는 이른 바 차별이 필수이다. 어느 누구도 현재의 이 자본주의 시스템이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겠지만, 과연 산업혁명이후에 고도의 산업화가 이루어지고 매일 끊임없이 부가 쏟아져 나와 인간은 물질적, 정신적으로 행복해졌을까?

 

산업혁명 이후 기술의 발전으로 의학 및 생활수준이 향상하여 안정적으로 생활하는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 되었고, 자본주의 시스템의 결과로 인간 삶의 질(Quality of life)이 증가 되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 할 수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본주의에 대한 이해 없이 자본주의를 이야기하며, 자본주의의 시작을 알린 자본주의의 아버지 애덤스미스(Adam Smith)의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에서 묘사한 자기이익을 이기심으로 오해한다. 하지만 애덤스미스는 정확하게 자기이익 이라는 것을 국부론의 모태가 되어 진 그의 저서 도덕감정론(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에 “부자가 부를 자랑하는것은 그 부로 얻은 이익이 선사하는 모든 유쾌한 감정들에 의해 인간들이 쉽게 공감하기 마련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 벅차오르고 자랑스러움을 느낀다”라고 기술하였다. 즉, 소수 기득권자가 아닌 정의와 도덕의 범주에서 모두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부자들은 어떠한가? 과연 그들은 그들의 주장대로 자본주의 시대에 살아간다고 말하면서도 자본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애덤스미스의 생각처럼 이타심을 위해 자기이익을 추구하고 있다고 말을 할 수 있을까? 자본주의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인간의 행복을 위한 기본권을 의, 식, 주라고 말한다. 좋은 옷을 입고 영양소 가득한 식사를 하며 쾌적하고 안전안 집에서 살아가는 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바라는 기본권인 것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빈부의 격차로 차별을 받고, 생존을 위한 마지막 기본권마저 침해 당할 위기에 처해 있다면 과연 그 시스템이 정의롭고 도덕적이어서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가치있는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그동안 애덤스미스의 사상을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 시장을 통제하고 지배한다고만 생각하였다. 그러나, 애덤스미스는 단 한번도 자유방임이라는 것을 ‘능력있는 기득권이 모든 부를 소유’하는 소위 ‘차별’도 가능하다는 주장을 한 적이 없다. 우리가 자본주의를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이제는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을 넘어 ‘보이지 않는 따뜻한 손(Invisible warm hand)’이 시장을 통제하고 지배하도록 우리 스스로가 자본주의를 도덕적이고, 정의롭게 만들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시기라고 본다. 이러한 노력이 기울여지지 않는다면 과연 지금과 같이 고장난 자본주의가 생존할 수 있을까? 반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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