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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로 먼저 떠난 '라면 화재' 형제 동생…남은 과제는

매번 새로운 대책 되풀이…"현실성·구체성 갖춰야"
정부 책임 강화 지적도…"양육 책임질 여건 조성해달라"

 

인천 '라면 화재 사건' 형제의 8살 동생이 사고 발생 37일 만에 안타깝게 숨지면서 돌봄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한 구체적인 대책 마련이 과제로 남았다.

 

돌봄 책임을 나눠 가진 가정, 교육 당국, 지방자치단체, 아동보호전문기관, 법원은 이들 형제에게서 아예 손을 놓지는 않았지만 필요한 책무를 다했다고는 볼 수 없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이를 보완하기 위해 내놓은 대책이 공염불에 그치지 않도록 현실에 어떻게 적용할지를 심도 있게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 반복되는 아동 관련 사건…대책 마련도 되풀이

 

앞서 정부는 지난 14일 학대 아동을 관리하는 아동보호전문기관과 법원에 일종의 강제력을 부여하는 취지의 방안들을 잇달아 내놨다.

 

방임·정서 학대에 대해 가정법원이 적극적인 보호 조처 명령을 할 수 있도록 개선안을 마련하기로 했고, 아동보호전문기관이 학대 아동 가정에 개입할 때는 바로 돌봄 서비스 기관에 연계할 수 있도록 했다.

 

방임 학대로 판단된 아동은 초등돌봄교실을 우선 이용하되 이를 부모가 거부할 경우 과태료도 부과할 수 있도록 법규를 개정하기로 했다.

 

내년까지는 모든 시·군·구에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을 배치, 아동보호전문기관과 지자체 공무원이 학대 조사 업무를 할 수 있게 할 방침이다.

 

그러나 정부는 천안에서 9살 남아가 계모에 의해 가방에 갇혔다가 숨진 사건을 계기로 지난 6월에도 아동학대 대응에 대한 종합 대책을 마련한 바 있다.

 

당시 교육부는 아동학대를 조기 발견하기 위해 예방접종이나 영유아 건강검진을 받지 않은 아동, 장기 결석하는 아동의 정보를 활용해 방임이 의심되는 사례를 선별하겠다고 했다.

 

경찰, 지방자치단체,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최근 3년간 학대 신고된 아동의 안전을 다시 한번 점검하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정부의 각종 대책에도 우리 사회의 돌봄 사각지대는 사라지지 않았다.

 

A군 형제는 지난달 14일 보호자가 없는 집에서 라면을 끓이려다가 불길에 갇혔고, 결국 동생은 지난 21일 끝내 숨을 거뒀다.

 

이들 형제는 방임 학대를 의심한 이웃 신고가 2018년 9월부터 2020년 5월까지 3차례나 접수된 사례였지만 여전히 돌봄 사각지대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변을 당했다.

 

◇ "시스템 없어서 발생한 참사 아냐…국가 책임 강화해야"

 

전문가들은 사건이 터질 때마다 새로운 정책을 쏟아내는 것보다는 현실에서 그 정책이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구체성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는 24일 "천안 아동학대치사 사건 때도 장관 회의를 열어 기관 간 정보를 공유하겠다고 했는데 무슨 변화가 있었느냐"며 "강제로 돌봄할 수 있도록 한 건 좋지만 개인권 침해 없이 현실에 적용될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구상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공 대표는 "법과 시스템이 없어서 아이들이 다치고 죽는 게 아니다"라며 A군 형제가 돌봄 사각지대가 아닌 돌봄 서비스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고 진단했다.

 

그는 "온 동네가 이 아이들이 방임됐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각 서비스 기관이 자기 할 일만 하고 손을 놨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라며 "아동보호전문기관이 민원 등을 우려해 그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면 건강가정지원센터에 다시 연계해주거나 하다못해 자원봉사센터를 연결해 도시락이라도 배달해줬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덧붙였다.

 

이번 사태의 원인이 아동 방임이나 학대의 문제라기보다는 정부의 책임 방기라는 지적도 나왔다.

 

김진수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아동에 대한 문제를 가정이 1차로 책임져야 한다고 하면 그 책임을 질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게 우선"이라며 "그런 여건도 없이 아이를 방임했으니 책임지라는 건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국가가 가정에 개입하는 전제는 무엇보다 재정 책임"이라며 "'당신이 애를 키울 때 이 정도 재정은 책임져줄 테니 확실하게 돌보라'는 메커니즘인데 이게 우리나라에선 아직 작동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이어 "스위스에서는 자존심 등 개인적인 이유로 공적 구조 대상자 신청을 하지 않는 걸 고려해 최대한 신청 조건을 완화하는 등의 방식으로 복지 혜택을 볼 수 있게 유도한다"며 "국가가 재판관처럼 징벌적으로 나서서는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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