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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에서] 다시 만난 교실

우리반 완전체가 모였다

 

홀수와 짝수로 나눠서 등교하다가 전체가 다 모인 건 6월 4일 뒤로 4개월 16일 만이었다. 아침 시간의 찬 공기를 뚫고 학교에 온 아이들의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발열체크와 손 소독을 마친 뒤 한명씩 교실에 입장했다. 약간은 어색하고, 약간은 설레는 새학기 특유의 분위기가 10월의 교실 안을 감돌고 있었다. 절간처럼 조용하던 교실이 간만에 활기를 띄고 시끌벅적 했다.

 

북적거리는 분위기에 편승해 나도 평소처럼 아이들에게 '아침은 먹었느냐', ' 잠은 잘 잤느냐' 같은 말을 건넸다. 10명 이내의 아이들이 일주일에 한번 씩 올 때는 교실이 너무 조용해서 그런지 농담을 걸어도 대답이 시원찮았다. 코로나가 사람의 성격을 바꾼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아이들의 재잘거림까지 가져간 모양이었다. 열 명 넘는 사람이 함께 있는 공간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교실이 조용했었다.

 

등교하자마자 1교시부터 이동 수업이 있었다. 여름 방학 이후로 처음 하는 이동 수업이었다. 지난 몇 달 동안 아이들은 교실에 앉아서 수업을 받다가 집으로 가곤 했다. 교사들이 교실을 옮겨 다녀서 학생들은 이동할 일이 없었다. 짧아진 쉬는 시간과 이모저모로 제약이 많은 수업 내용 때문에 학교에서 몸을 크게 움직일만한 상황은 더 없었다. 무용실에서 연극 수업을 위한 연극 놀이를 하고 나니 긴장됐던 아이들 표정이 조금씩 풀리는 게 보였다.

 

특히 눈에 띈 건 준호(가명)였다. 준호는 온라인 수업에 적응하지 못했다. 결석이 이어져서 차선책으로 매일 교실에 와서 담임인 나와 둘이 오붓하게 온라인 수업을 받았다. 집에서는 수업 진행이 안 된다고 판단해서 부모님과 함께 결정한 특단의 조치였다. 학교에 온 준호는 식물처럼 한자리에 앉아서 태블릿을 들여다보다가 수업을 마치면 집으로 돌아갔다. 가끔은 엎드려 잠을 자거나 허공을 멍하니 보고 있기도 했다. 집으로 가기 전 인사하는 시간에만 힘이 넘쳤다.

 

식물 같았던 준호는 연극 놀이 시간에 달리는 야생동물이 되었다. 걸어 다니며 악수하는 놀이였는데 대체로 뛰고 조금씩 걸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지친 기색이 없었다. 비닐장갑을 낀 손으로 나와 악수하는 준호의 손아귀에는 힘이 넘쳤다. 놀이가 끝날 때까지 열정적으로 뛰어다니며 존재감을 뽐냈다. 그 자리에 교실에서 시들시들한 채로 앉아서 졸던 준호는 없없다.

 

준호 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 모두 비슷했다. 아이들은 뛰면 저절로 웃는다더니 마스크 너머로 웃는 게 보였다. 교실에선 말수가 적던 친구들도 노래에 맞춰 장난치고 떠들며 즐거워했다. 오래간만에 경직된 모습에서 벗어난 아이들을 보니 코로나 유행 전 학교가 떠올랐다. 사소한 놀이 하나에 기뻐하고 운동장에 나가 뛰어노는 게 일상이었는데 이제 그런 모습이 특별한 일이 되어버렸다.

 

요즘 학교에서 보기 드문 특별한 일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아이들 사이의 다툼이다. 싸우려면 같이 놀거나 활동하면서 서운함이 쌓이는 서사가 필요하다. 놀기는커녕 잠시 붙어서 이야기 나눌 시간조차 없으니 싸우는 일이 거의 없다. 자리 배치는 가장 멀리 떨어질 수 있는 시험 대형으로 바뀐지 오래됐고 쉬는 시간은 짧디 짧다. 교류가 없으니 다툼도 없다.

 

싸움이 없는 평화로운 교실은 닿을 수 없는 이상향으로 존재해왔다. 20여 명의 아이가 좁은 곳에 몰려 있는데 언쟁이나 싸움이 일어나지 않는 게 더 용한 일이었다. 그런 이상향을 코로나 덕분에 갑작스럽게 만나게 되어 매우 낯설었다. 친구 사랑 교육, 학교 폭력 예방 교육을 하면서 친구끼리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고 쉼 없이 떠들 때 지금의 교실 풍경을 떠올렸었다. 강제로 평화로운 교실이 되고 보니 내가 상상하던 모습과 비슷하면서 다르다. 평화롭지만 생명력이 꺼진 교실의 모습처럼 느껴진다. 평화는 평화인데 이 평화가 아닌 모양이다.

 

아이들이 모두 와서 교실이 복작거리자 예전에 알던 학교 느낌이 났다. 언제 다시 코로나가 심해져서 아이들이 학교에 못 나오게 될지 모른다. 그전까지 부지런히 장난치고, 까불고, 가끔은 싸우는 살아 숨 쉬는 교실의 모습을 되찾아야겠다. 아이들은 유연함과 적응력 둘 다 가지고 있어서 금세 평화로운 교실을 그리워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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