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찰은 요새말로 편지다. 예전의 간찰은 아무 종이에 쓰지 않았다. 장지(壯紙)로 접은 종이를 쓰고, 이 편지는 같은 종이로 접은 봉투를 사용하였다. 간찰은 발신자의 처해 있는 상황을 가장 잘 반영하면서도 그 수신 대상에 따라 형식이나 내용에 일부 제약이 가해지는 특성이 있다. 특히 수신자와의 이해, 친소 관계에 따라 설득을 하기도 하고 처지를 호소하므로써 문제 해결의 기회로 삼기도 했다.
간찰은 역사적 사실이 개인의 시각을 통해 표출된다는 점에서 주관성과 객관성을 동시에 담보하고 있다. 또 간찰은 그 당대의 시대상이 담겨 있어서 역사적 자료가 될 수 있고, 사실적인 내용 때문에 현장감이 강한 장점도 있다. 최근 의암학회에서 ‘의암(毅菴) 류인석(柳麟錫) 자료집’을 펴냈다. 의암이 가족과 친지들에게 보낸 간찰과 성제(省齊) 류중교(柳重敎), 습제(習齊), 이소응(李昭應), 중암(重菴) 김평묵(金平默), 직헌(直軒) 이진응(李晉應) 등의 간찰 130 여편이 실려있다.
의암은 조선 후기 대학자인 이항로의 학통을 계승한 대학자로서 일제의 농락으로 나라와 민족이 위기에 처하자 의병을 일으켜 70평생을 항일투쟁을 한 위대한 민족 지도자였다. 한때는 3천명에 이르는 의병을 모아 일본군과 대결하기도 했으나 역부족으로 종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홍우(洪友)의 일은 무슨 변이란 말입니까. 소식을 듣고 난 후 나도 모르게 기가 막히고 정신이 혼미 해졌습니다. 하늘이 어찌 차마 이렇게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알지 못할 것은 이(理)입니다. (중략) 그러나 천명인 것을 무엇이라 하겠습니까. 마음을 넉넉하게 먹으시기 바랍니다. 나머지 예를 갖추지 못하고 아룁니다.” 대학자요, 근엄한 항일 투사가 쓴 편지 같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 정감과 예절의 돈독함에는 머리가 수그려 질 뿐이다.
이창식/주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