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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아랫목 사랑

 

찬바람 휘휘 돌아치는 겨울이 오면 문득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 따뜻해지는 단어가 있다. 따끈따끈한 온기에 언 손 살살 녹아내리는 그 순간의 포근함 같은 ‘아랫목’이라는 단어. 요즘은 보다 발달한 다양한 형태의 난방으로 딱히 아랫목 윗목을 구분하진 않지만 그 옛날 온돌방의 ‘아랫목’이란 아궁이 가까운 쪽의 방바닥을 이르는 말이다. 연탄을 때는 아궁이든 군불 때는 재래식 아궁이든 아궁이 가까운 쪽의 방바닥이 가장 먼저 따뜻해지고 오래도록 식지 않아 추운 겨울이면 가족들이 가장 선호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겨울이면 더더욱 비중이 높아지는 아랫목의 역할은 참으로 다양했던 것 같다. 밤늦게 귀가하시는 아버지 고봉밥을 담요에 돌돌 말아 이불 밑에 묻어 둔다거나, 감기로 콜록대는 막내 동생 담요 깔아 눕히고 병간호할 때는 특급 병실로 쓰인다거나, 명절 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식혜를 만들기 위해 고두밥에 엿기름 섞어 몇 시간이고 뜨끈뜨끈한 아랫목에 묻어 발효시키는 공간으로도 활용되는 등등. 그 밖에도 수많은 아랫목의 역할 중에 가장 큰 역할은 가족들의 사랑을 거듭 확인하는 ‘사랑의 공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이들이 많았던 우리 집은 겨울이면 특히 한 방에서 옹기종기 잠을 잘 때가 많았다. 새벽녘 먼저 일어나신 어머니 아버지의 목소리가 두런두런 들리면 하나같이 엎치락뒤치락 아랫목으로 파고들어 머리만 쏙 내밀고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나누었던 대화. 지난밤 꿈 이야기, 학교 이야기, 친구와 속상했던 이야기, 막내를 놀리는 아버지의 싱거운 농담 등등. 전혀 계산되지 않고 문득문득 떠오르는 대로 잠꼬대처럼 뱉어냈던 그 때 그 이야기들이야말로 내 삶에 있어서 가장 진지하고도 소중한 보약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바로 그 온 가족이 함께 나누었던 ‘아랫목사랑’의 힘으로 말이다.

 

한 때 다도를 배우느라 일주일에 한 번씩 꼬박꼬박 들렀던 ‘하정다회’라는 소중한 공간이 있었다. 팔순을 넘기신 스승님은 추운 겨울이면 영락없이 군불로 대운 아랫목을 준비하고 기다려주셨다. 어쩌면 쉽게 잊을 수 없는 뜨끈뜨끈한 ‘아랫목사랑’을 스승님께서는 이미 알고 계셨는지도 모른다. 두툼한 이불을 깔아놓은 그 아랫목, 발부터 밀어 넣고 온 몸을 녹인 다음에야 함께 나누었던 쌉싸름한 녹차 한 모금의 첫 느낌. 스승님 돌아가시고 십 수 년이 지나도 결코 잊을 수 없는 애틋한 사랑으로 남아있다.

 

문득, 오늘날 무엇이 그 아랫목을 대신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뜨거운 온기는 아니겠지만 서로 눈 마주하고 계산 없이 속내 훌훌 털어내며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그런 공간 말이다. 아마도 온 가족이 마주앉아 식사를 하는 공간인 식탁이 될 수도 있겠고 차를 함께 마시는 차탁이 될 수도 있겠다. 아니면 함께 텔레비전을 보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인 소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공간이나 장소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을 것 같다. 함께 하는 서로의 시선으로, 마음으로 공감하는 따스한 온기만 있다면 그곳이 어디라도 상관이 없을 듯싶다. 어머니 아버지께서 내 어린 날 가슴 속 난로처럼 남겨주신 그 따끈따끈한 추억 속 ‘아랫목 사랑’을 나 또한 내리사랑으로 전해 주고 싶다. 오롯이 남겨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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