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3 (화)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잘못 적용된 ‘피해자중심주의’…선의의 희생자 양산 우려

 

지난 2016년 SNS를 뜨겁게 달궜던 ‘이자혜 작가 사건’. 이자혜 작가는 당시 미성년자가 성폭행을 당하도록 사주 혹은 방조했다는 논란에 휩싸인다. 작가는 자신의 10대 팬을 지인에게 소개했으며 이 후 10대 팬이 지인에게 강간을 당했다고 주장하면서 이자혜 작가는 온라인상에서 여론의 집단적인 공격을 받게 된다. 물론 해당 사건은 작가가 십대 팬이 지인과 성행위를 한 후에 나눴던 카톡 메시지 등을 공개하면서 법적으로 불기소 처분됐지만 작가가 입었던 정신적 충격과 사회적 명성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됐다.

 

2000년 운동사회 성폭력 뿌리 뽑기 100인 위원회(이하 100인위)는 ‘피해자 중심주의’를 ‘성폭력 사건의 의미 구성과 해결 과정에서 피해자인 여성의 주관적 경험에 진실의 권위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이에 100인위는 일부 사건들의 경우 진상 조사 없이 ‘피해자의 진술만으로도 가해 사실은 성립할 수 있다’는 입장에 따라 소위 ‘가해자’들의 실명을 온라인에 공개했다. 그러나 공개된 일부 사건의 경우 성폭력이라고 볼 수 없다는 100인위 스스로의 판단이 대두됨에 따라 피해자 중심주의에 대한 비판과 논란이 시작됐다.

 

이후 피해자 중심주의가 적어도 ‘성폭력 피해 주장자의 말을 모두 믿어주는 것’은 아니라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즉 피해자의 말만 믿고 피해자중심주의를 잘 못 적용하면 이자혜 작가처럼 선의의 희생자가 양산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허재현 전 한겨레신문 기자는 ‘피해자중심주의는 원칙이 아니라 캠페인이어야 한다’는 시론을 통해 경향신문이 ‘박재동 화백 미투 조작 의혹’을 보도한 강진구 탐사보도 전문기자를 징계한 사실에 대해 비판했다.

 

알려진 내용을 종합해보면 미투 제기자에 대한 2차 가해성의 보도가 언론의 피해자중심주의 원칙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다만 현재까지 강진구 기자는 경향신문을 상대로 징계 무효소송을 진행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허재현 기자는 “피해호소인의 입장에서 사안을 판단하려 노력하되, 그의 말이 어디까지 사실인지 검증하는 것은 언론의 상식이지 '2차 가해'가 될 수 없다”면서 “객관적인 '미투 검증 보도'를 악용하는 구체적 사건이 이어져야 '2차 가해'이지 '검증 자체가 2차 가해다'라는 주장은 그간 여성주의 내부에서조차 언론계에 요구했던 일이 없다”고 여성학자의 의견을 전했다.

 

‘피해자'라는 용어 대신 '피해호소인'이라는 용어를 처음 쓴 여성운동가 최미진은 "피해자중심주의는 증거주의로 대체돼야 하고 2차 가해 용어도 사용해선 안 된다“면서 "2차 가해 용어는 피해호소인의 말을 절대화 하는데 이용돼 진실 규명 노력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사건과 관련한 논의를 가로막고 도덕주의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부작용을 낳는다"라고 지난 2017년 성폭력2차가해와 피해자중심주의 논쟁에서 주장했다.

 

이처럼 '피해자중심주의와 2차가해'는 여성주의 내부에서조차 그 비판적 성찰과 문제제기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으로 언론이 자세한 검토 없이 대중에게 '합의된 여성주의 원칙'처럼 제시하는 건 당연히 성급하다는 지적이다.

 

허재현 기자는 또 “여성주의 논쟁에 개입하려는 게 아니며 피해자중심주의가 틀렸다는 주장 역시 아니다”면서 “그럼에도 '반여성주의'라고 낙인찍힐 위험을 무릅쓰고 기자로서 이런 글을 쓰는 건, 권김현영의 말처럼 "우리에게는 더 나은 것이 무엇인지 논쟁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라고 시론을 마무리했다.

 

[ 경기신문 = 방기열 기자 ]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