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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로 10환 짜리 우표에 적십자 기금 5환을 더한 15환 짜리 우표가 발행된 것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부산 피난 정부 시절이었다. 전쟁 통에 양주삼 대한적십자 총재를 비롯한 지도급 인사들이 인민군에 납치되고, 피난을 가지 못한 적십자사는 서울에서 고초를 겪기도 했다. 이 때 부산에 대한적십자사 중앙연락위원회가 창립돼 김활란(金活蘭)이 위원장으로 활약했으나 얼마 뒤 공보처장으로 입각하는 바람에 적십자 활동은 사실상 멈추고 말았다.
이런 시기에 이승만 대통령이 대한적십자 명예 총재 자격으로 적십자 회비 모금을 위한 대통령 선포문을 공보처를 통해 발표하고, 나아가서는 적십자 기금 모으기 우표까지 발행 하도록 지시했던 것이다.
당시 돈 미화 4만 달러를 기증한 캐나다 적십자사의 도움도 컸다. 피난지 부산에 집결한 적십자 부녀 봉사원들은 이 돈으로 광목을 사들여 군병원에 입원 중인 장병들의 환자복 1만여 벌을 만들어 입혔는데 이때 부산시내의 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이 재봉일을 도왔다.
당시의 서독은 부산에 서독적십자병원을 세워 주었고, 유엔 16개 참전국과는 별도로 스웨덴, 인도, 덴마크, 노르웨이, 이탈리아 등 5개국에서는 야전병원과 적십자병원을 개설해 우리를 도와주었다.
휴전이 되자 휴전협정 제3조 전쟁포로에 관한 조치 51항~57항에 따라 대한적십자사는 9개국으로 편성된 국제연합측 합동적십자단의 일원으로 포로 교환업무에 참여했다. 대한 적십자사 수석 대표는 이범석(李範錫)이었고, 의무 행정 요원 23명이 동참했었다. 유엔군이 인수한 포로는 1만2천760명, 공산측에 넘겨준 것이 7만5천797명이었다. 두고 두고 할 옛 얘기가 어찌 이뿐이랴.
이창식/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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