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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행 칼럼] 수평적 폭력

 

 

이재영·이다영 쌍둥이 여자배구 국가 대표 선수 등 스포츠 스타들의 과거 폭력 문제로 떠들썩하다. 그들이 10여 년 전 초중고 시절에 벌인 일들은 끔찍해 입에 담기조차 힘들다. 스포츠 선수들의 과거 폭력을 현재화해 엄벌에 처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전근대성을 벗어나고 있다는 하나의 조짐으로 읽힌다.

 

폭력은 단순히 나쁘다는 것을 훨씬 뛰어넘는다. 정당하지 않은 방식으로 타자를 굴복시켜 주종 관계를 일상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폭력이 기득권층의 무기이자 숨겨진 이데올로기라는 사실을 아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인간의 역사가 이를 증언한다. 멀리 갈 것 없다. 물리적 폭력뿐만 아니라 합법을 가장한 제도적 폭력이 지금도 우리를 지배하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기득권층이 자신들을 특권화하는 수단으로 가하는 이 수직적 폭력을 보통 사람들이 내재화한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평화와 정의, 민주주의와는 정반대 지점에 있는 폭력을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체화하면 어떤 결과가 초래할까? 정당성 없는 지배질서는 당연히 멈추지 않는다. 멈추기는커녕 합리화해주기 때문에 더욱 견고해진다.

 

내재화한 폭력은 자연스레 자신들과 엇비슷한 부류인 보통 사람들에게 향한다. 프랑스 의사이자 알제리 독립운동가 프란츠 파농이 발견한 수평적 폭력은 여전히 우리 사회를 분석하는데 유효하다. 스포츠 스타들의 학폭뿐만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일터 등 사회 곳곳에서 빚어지고 있는 크고 작은 폭력도 그 범주에 속한다. 널리 회자하고 있는 '서민이 서민을 괴롭힌다'는 말은 수직적 폭력을 체화해 수평적 폭력을 일삼는 우리들의 자화상일지 모른다.

 

닭장 속 닭들에 빗댄다면 살풍경한 걸까? 닭장에 갇힌 닭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서로 죽기 살기로 싸운다. 털이 뽑혀나가고 살점이 떨어져 나간다. 피를 흘리며 죽어가면서도 수평적 폭력을 인식하지 못한다. 닭장을 만든 자가 누구인지, 자신들의 맹목적 이전투구 뒤에 있는 수직적 폭력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 리 없다.

 

이쯤이면 중요한 게 무엇인지 드러나지 않았을까? 폭력을 단순하게 보지 말고 구조적으로 이해하는 것, 그것이 사회에서 통용되지 않도록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 그러나 수평적 폭력을 떨궈낼 수 있는 보다 근본적인 게 있지 않을까? 최인훈의 희곡 「봄이 오면 산에 들에」가 보여주고 있는 연대와 같은. 문둥병 환자인 엄마를 따라 일가족은 물론 딸의 연인까지 산속으로 들어가 함께 사는 삶은 세상의 폭력을 내재화하지 않는 위대한 거부 아닐까? 폭력 세상 속에서도 대동 세상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역설 아닐까?

 

장모처럼 문둥병 환자가 된 바우의 노래는 뼈를 때린다. 처절한 아름다움이다. 수평적 폭력에 대한 준열한 꾸짖음으로 받아들인다면 지나친 것일까?

 

"우리 장모가 / 받아 쓴 탈 / 우리 장인이 / 받아 쓴 탈 / 우리 마누라가 / 받아 쓴 탈 / 이내 몸도 / 받아 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