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에 공자의 제자 자장(子張)이 선비(士)가 무엇인지에 대해 극명하게 간파한다. “선비는 국가가 위급함을 당하면 목숨을 바치고 이득을 보게되면 정의에 맞는가를 생각한다”고 했다.
이러한 선비정신이 사회 깊숙히 침투한 곳이 공자의 탄생지인 중국이 아니고 한국이었다는 것이 흥미롭다.
조선조 개국 때부터 선비정신이 곳곳에서 나타나 정몽주 등이 목숨을 버렸고 세조때 성삼문 등 사육신은 불사이군(不事二君)이라며 초연히 죽어 갔다.
성삼문은 죽음을 앞두고도 태연히 시조를 읊어 견위수명의 선비정신을 발했다. 북소리는 사람의 목숨을 재촉하고/서풍은해가 지기를 바라누나 /황천에는 주막이없다는데/오늘 밤은 어느 집에서 머물고 죽음에도 당당한선비의 기개가 어떤지를 보여주고 있다.
임진왜란시에도 목숨을 바치는 선비정신이 이어졌다. 경향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 대부분이 유생(儒生:선비)들이었고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곽재우, 김천일, 고경명 등 선비출신 의병장 들은 칼 한번 잡아보지 않은 선비 였다. 때문에 고경명 등 많은 선비의병장들이 전사 하기도 했다.
근세에 들어와서 선비의 기개를 드러낸 것은 동학란 지도자들이었다.
전봉준, 손화중, 최경선, 성두환 등은 사형을선고 받으면서도 의연함을 잃지 않았다. 당시 재판을 취재하던 일본의 시사신보기자는 사형수들의 당당한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우리 한민족의 자랑스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요즈음 우리나라 안팎사정을 볼 때 선비정신이 더욱 그리워 진다. 오로지 국가와 정의만을생각했던 옛날의 선비들이 작금의 정치판을 어떻게 볼까 숙연해진다.
滿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