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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의 달리는 열차 위에서] 사람들은 화가 났다

  • 최영
  • 등록 2021.04.09 06:00:00
  • 13면

 

그해 겨울은 모질게 추웠다. 물어물어 겨우 찾아간 여수 돌산대교에서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은 칼바람을 맞으며 이젠 더 이상 우리 관계에 희망이 남아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해가 저무는 돌산대교에서 오랜 인연을 이어오던 연인을 그렇게 떠나보냈다. 80년대부터 시작된 수배생활이 4년차에 접어드는 시절이었다. 그 겨울이 지나고 몇 달 후 나는 전해 들었다. 그녀는 나랑 헤어지자 말자 처음 맞선을 본 남자와 한 달 만에 결혼해버렸다는 사실을.. 나에겐 세상이 끝난 것만 같았다. 당시의 나는 사람 마음이 변했다는 자체를 이해할 수도, 인정할 수도 없었다. 세월이 흐른 후에야 깨달았다. 그녀가 떠난 이유는 바로 그것 때문이었음을.. 희망이 없으면 흔들림이 당연한 것임을 이해하지 못하는 내가 얼마나 답답했겠냐고..

 

시간이 흘려 YS문민정부가 들어서고 신분정리가 되면서 나는 철도기관사가 되었다. 처음 기관차를 타던 90년대 지방의 철길 건널목에는 차단기도 없는 곳이 많았다. 반면에 어떤 건널목은 차단기에 건널목 안내원까지 근무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건널목에는 대부분 기관사들끼리 부르는 이름이 붙어있었다. 예를 들어 ‘김철*건널목’, ‘박영*건널목’ 식으로.. 알고 보니 해당 건널목에서 사망사고를 경험한 기관사의 이름이었다. “저기서 언제 누구는 시동이 꺼진 포니를..”식으로 유래를 전해주는 선배기관사의 말을 들으며 그네들의 목숨값이 건널목 차단기로, 안내원으로 지불되었음을 알았다. 

 

어제부로 자칭 ‘서울과 부산의 명예시민’으로 살아온 시간이 마감되고 저녁에 술을 한 잔 하면서도 나는 개표방송을 볼 수조차 없었다. 우려가 현실이 되면 눈을 감고 싶은게 당연지사던가? 문정부의 개혁을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사람들의 변심을 이해하지 못했고 인정하기도 싫어한다. 왜곡된 언론지형을 바꾸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고 낙담도 터져 나온다. 한편으론 일리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나 180석을 쓸어간 지난 총선도 기레기라 불리는 똑같은 언론환경에서 치렀다. 그때는 언론의 공격이 통하지 않았고 지금은 먹혔다는게 문제의 핵심 아닌가? 결국 2030을 비롯한 지지층의 변심은 그 옛날 나의 추억처럼 희망이 없기 때문에 변한 것이었고, 그 변함을 이해조차 못해준다 싶으니 떠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번선거를 단순히 ‘21년 보궐선거’로 기억하지 말고 위의 건널목이름처럼 특정한 명칭으로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사람이름이든 결정적 패인을 지칭하든 어쨌든 좋다. 이번 선거를 교훈으로 삼겠다면 그렇게 기억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는 그런 건널목 이름을 통해서 내가 똑같은 상황에 처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생생하게 배울 수 있었으니깐 말이다. 


선거에서 보듯이 사람들은 많이 화가 났다. 그간 지속적인 언론의 채색대로 현정권은 공정하지 못하다고, 부패했다고 느낀다. 부의 분배가 심히 불평등한 사회에서는 정부가 민주화될수록 사회는 악화된다. 그리고 부패한 민주정에서는 언제나 최악의 인물에게 권력이 돌아간다. 나는 두렵다. 집권여당이 선거결과를 빌미로 개혁작업을 미루지나 않을지.. 그러면 정말 더 암울한 미래가 닥칠 것이기에 그게 더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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