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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역사를 말하다] 허왕후의 오빠 장유화상 이야기

가야불교 이야기⑧


 

◆보조태후 허왕후

 

수로왕과 허왕후에 대해서는 무엇보다 김해 사람들이 대를 이어 이야기를 전하고 유적들을 보존했다는 특징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경상도 김해도호부조에는 허왕후릉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구지산(龜旨山) 동쪽에 있다. 세상에서 전하기로는 왕비는 아유타국의 왕녀인데, 혹은 남천축국(南天竺國)의 왕녀라고 한다. 성은 허(許), 이름은 황옥이고 호는 보주태후(普州太后)인데, 읍인(邑人)들이 수로왕릉에 제사지낼 때 함께 제사지내고 있다.”

이 내용은 조선 후기 편찬한 《여지도서(輿地圖書)》 하(下)에도 그대로 실려 있다. “세상에서 전하기로는[世傳]”이란 말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온 구전(口傳)사료라는 뜻이다. 여기에는 《삼국유사》에는 나오지 않는 ‘보주태후’라는 호가 등장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보주태후가 등장한다. 조선 정조 16년(1792) 규장각의 각신 이만수(李晩秀)가 수로왕릉과 허왕후의 릉에 대해서 보고한 별단(別單)이 기록되어 있다. “가락국 왕릉이 김해부의 성 서쪽 2리쯤 되는 평야에 있는데, 사면이 모두 낮은 논으로 둘러져 있습니다. 비록 큰 장마를 만나더라도 능 곁의 10보(步) 안에는 물이 고이지 않아서 거주하는 백성들이 이상한 일이라고 전하고 있습니다…수로왕과 허왕후릉은 2리쯤 떨어져 있는데, 작은 비석에 ‘수로왕보주태후허씨능(首露王普州太后許氏陵)’라고 열 자를 썼습니다(《정조실록》 16년 4월 7일)”

《김해김씨세보(金海金氏世譜)》에는 허왕후가 보주태후란 호를 갖게 된 해를 적시하고 있다. 연희(延熹) 임인(壬寅)년에 보주황태후(普州皇太后)로 높였다는 것이다. 연희(延熹)는 후한 11대 환제(桓帝:재위 146~168)의 연호이고 임인년은 서기 162년이다. 허왕후는 162년에 보주태후가 되었다는 것이다. 《삼국유사》 〈가락국기〉는 허왕후가 영제(靈帝) 중평(中平) 6년 기사(己巳:189년) 3월 1일에 세상을 떠났다고 전하고 있는데, 《김해김씨세보(이하 세보)》는 허왕후가 살아 있을 때 ‘보주황태후’라는 존호를 받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허왕후의 동기인 장유화상

 

 

《세보》에는 이 기사 바로 뒤에 황태후의 동생이라는 보옥선인(寶玉仙人)에 대해서 “황후의 동생 보옥선인은 일명 장유화상(長遊和尙)이라고 하는데, 금관국에 와서 지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보옥선인, 즉 장유화상은 가야 불교 전래의 수수께끼를 풀 열쇠를 쥔 인물이다. 《세보》는 수로왕과 허왕후가 10남 2녀를 낳았는데, 장남은 태자(2대 거등왕)가 되었고, 두 아들은 왕후의 성을 내려서 허씨가 되었다고 말한다. 나머지 일곱 아들에 대해서 《세보》는 “세상에서 전하기는 보옥선인과 두류산(頭流山:지리산) 칠불암(七佛庵)에 들어가 신선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는데 암자는 하동(河東)에 있다.”라고 전한다. 수로왕과 허왕후의 열 아들 중 첫째는 거등왕이 되고, 둘째·셋째는 허씨가 되고, 나머지 아들 일곱은 외삼촌 장유화상과 함께 칠불암에 들어가서 신선이 되었다는 것이다. 순조 12년(1812)에 작성된 〈은하사 취운루 중수기(銀河寺翠雲樓重修記)〉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세상에서 전해오기를 가락국 왕비 허씨가 천축국에서 올 때 오빠 장유화상이 따라왔다. 천축국은 본래 불교국이다. 수로왕의 명령에 의해서 은하사 및 명월사가 창건되었다.”

이 기록은 장유화상을 허왕후의 오빠라고 전하지만 허왕후와 인도에서 온 것에 대해서는 같다. 지리산 쌍계사가 수로왕과 허황후의 일곱 왕자가 수도하던 곳이라는 기록들도 전한다. 조선시대 편찬한 〈가락삼왕사적고(駕洛三王事蹟考)〉라는 기록이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삼왕(三王)은 수로왕, 구형왕, 흥무왕 김유신을 뜻한다. 경남 산청에 왕산능(王山陵)이 있는데, 가락국의 10대왕인 구형왕(仇衡王)의 능의 능이라고 전해지는 곳이다. 구형왕은 구해(仇亥) 또는 양왕(讓王)이라고도 불리는데, 532년 신라 법흥왕에게 항복한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이자 김유신의 증조부이기도 하다. 그 중간본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쌍계사 위로 20리를 올라가면 암자가 있는데 7불암이라고 한다…가락국 시조 수로왕은 10왕자가 있었는데, 한 명은 저군(儲君:세자)가 되고 두 명은 허씨성을 내려받고, 7명은 속세와 절연하고 보옥선인을 따라 가야산 운상원으로 들어가 도를 닦아 신선이 되었다”

장유화상(보옥선인)이 사찰을 창건했다는 기록이 여기저기에 남아 있는 것이다.

 

 

장유화상이 창건한 여러 사찰들

 

 

김해 명월사(현 흥국사)라는 절이 있다. 이 절은 임란(1592) 때 불탔다가 광해군 10년(1618)에 재건했다가 다시 퇴락한 후 숙종 32년(1706) 중수했는데, 이때 승려 징원(澄元)이 〈김해명월사사적비(金海明月寺事蹟碑)〉를 썼다. 이에 따르면 중수할 때 담장 맡에서 글씨가 쓰여 있는 명문 기와를 주웠는데, 이런 내용이 실려 있었다는 것이다.

 

“건강(建康) 원년(144) 3월에 장유화상이 서역에서 불법(佛法)을 받들고 왔다. 수로왕이 이 도를 중하게 여겨서 불교를 숭상하는 것이 가하다고 했는데, 이것이 징험된다.”

 

장유화상이 서역에서 불법을 받들고 오자 수로왕이 명월사를 창건했다는 것인데, 아마도 명월사를 창건한 해가 서기 144년이라는 뜻일 것이다. 이는 서기 144년에 가야에 불교가 공인되고 사찰이 창건되었다는 기록이다.

 

우리나라 곳곳의 사찰들에 신라의 승려 의상이나 자장 또는 고려 초 풍수대가였던 도선이 창건했다는 연기가 전해지고 있는 것처럼 장유화상도 김해 여러 사찰은 물론 지리산 쌍계사까지 창건했다는 연기설화를 전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조선 중기 주세붕(周世鵬:1495~1554)이 쓴 《무릉잡고(武陵雜稿)》에 실린 〈장유사중창기(長遊寺重創記)〉이다. 가락(김해)에서 온 승려 천옥(天玉)이 주세붕에게, “빈도(貧道)가 다시 가락(駕洛)의 장유사를 다시 짓는데, 병신년(1536) 시작해서 내년인 정유년(1537) 마칠 것입니다. 기둥이 60개 있는 건물인데, 불전(佛殿)은 황금만 사용하고 주단으로 장식해서 화려하기가 나라 남쪽에서 으뜸일 것입니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승려 천옥은 또 “이절은 신라 애장왕이 시작했지만 그 전에 수로왕이 거듭 넓혔습니다. 중창한 것이 무려 여덟 번인데, 여덟 번째로 중창한 화주(化主)가 소승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천옥은 “그 처음 시작한 사람은 월지국(月支國) 신승(神僧)인 장유(長遊)가 화주가 되었는데, 나머지 (중창한) 사람들의 이름은 잊었습니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조선 중기 장유사 주지 산옥이 장유사의 창건 연기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주세붕은 중종 36년(1541) 풍기군수로 나가서 백운동서원을 세워서 조선 최초의 사액서원을 만든 성리학자였다. 불교를 배척했던 성리학자가 이런 연기사화를 사실로 믿고 글로 남긴 것이다. 현재 남아 있는 장유화상 초상에 ‘월지국 장유화상(月支國長遊和尙)’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장유화상이 월지국에서 왔다는 이야기 또한 광범위하게 공유되었다는 뜻이다. 월지국에 대해서는 신라 남해왕 원년(서기 4) 신라에 불교가 전래되었다고 적고 있는 〈금강산 유점사 사적기〉에 대해서 언급할 때 이미 설명했다. 무조건 우리 역사를 깎아내리고 부정하는 일제 식민사학의 눈을 우리의 자주적인 시각으로 바꾸면 가야불교의 이른 전래를 인정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태극학보》 제7호(1907.2.24.)에 선사(禪師) 일우(一愚) 김태은(金太垠)은 〈삼국의 종교를 약술해서 논한다(三國 宗敎略論)〉에서 “유교는 기자에서 시작해서 신라에서 성행했고, 불교는 가락국 수로왕 때 황비의 오빠인 장유화상이 보주(普州)에서 허왕후와 함께 와서 불모산(佛母山=장유산)에서 경전을 강독하니 중국 한 광무제 건무 18년이요”라고 말했던 것이 이를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