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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의 하늘의 窓(창)] 진화의 창조성, 새로운 패러다임의 출현

 

16세기는 서양 과학사의 일대 전환을 기록했다. 《과학과 근대세계(Science and the Modern World)》를 쓴 철학자 알프레드 화이트헤드가 명확히 짚어낸 듯이 “16세기는 기독교가 서구를 지배한 시대가 깨져나가면서 근대 과학이 출현한 세기”다. 그가 이 시대의 대표적 과학자로 꼽은 인물은 코페르니쿠스와 해부학의 대가 베살리우스다.

 

우연의 일치처럼 1543년은 바로 이 두 사람의 책이 나란히 출간된 해였다. 태양이 아니고 지구가 돈다는 주장을 실은 《천체세계의 회전에 대하여(On the Revolutions of Celestial Bodies)》와 인간의 육체 내부를 들여다본 《인간의 육체, 그 구조에 관해》가 그 책들이다.

 

코페르니쿠스의 책 제목에 있는 ‘Revolution’은 회전한다는 뜻을 가진 ‘revolve’라는 영어 단어처럼 “회전(回傳)”을 의미했는데 결국 과학사의 ‘혁명’을 주도한 결과를 가져왔다. 지구가 중심이었던 세계가 태양으로 바뀌었으니 그때까지의 모든 사유의 구조가 뒤집어지고 말 수 밖에 없는 건 당연했다.

 

- 과학사의 혁명

 

코페르니쿠스와 베살리우스는 탐구대상의 크고 작음은 있지만 한없이 잘게 쪼개고 한없이 확장하는 무한의 세계에 대한 과학사의 여정을 시작할 수 있게 했다. 그렇지 않아도 1548년에 태어나 1600년에 처형당한 지오다르노 부르노(Giodarno Bruno)는 태양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지동설과 함께 우주는 또 다른 우주가 한도 끝도 없이 이어져 있다고 주장했다.

 

오늘날 우리는 은하계(galaxy)의 수가 최대 2조에 이르며 하나의 은하계 안에 1천억에서 1조에 이르는 별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이런 세계에 눈뜨기까지는 지오다르노 브루노같은 순교자가 있었고 당대의 지배적인 생각을 넘어서려는 혁명적 도전이 계속 이어져왔다. 바로 그렇게 1859년 출간된 다윈의 《종(種)의 기원》이 과학사만이 아니라 인간의 사유체계 전반에 걸쳐 얼마나 충격적인 사태를 가져왔는지는 더 설명이 필요없다.

 

기존의 이론이나 설명방식으로는 해명이 되지 않은 현실과 마주할 때 단호하게 이와 결별하고 새로운 사유의 방식을 발명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용기가 요구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는 뉴턴 물리학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온 상대성 이론을 내놓은 아인슈타인에게마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는 양자(퀀텀/quatum)역학의 불확정성에 대한 이론적 승복을 끝내 하지 않았다. “신은 우연에 좌우되는 식으로 우주에 주사위를 던지고 놀진 않는다. (God does not play dice with the universe.)”라는 그의 이 유명한 발언은 명확한 법칙과 계산으로 해명되지 않으면 과학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하이젠베르크의 양자역학 이론이 결국 옳다는 게 입증되었다.

 

- 아인슈타인도 빠진 함정

 

아인슈타인과 하이젠베르크 사이에서 벌어진 논쟁을 보면서 아인슈타인과 절친이던 물리학자 폴 에렌페스트는 그에게 이런 면박을 주었다. “자네가 이러는 거 부끄러운 줄 알게나. 양자역학에 대해 매일 새로운 근거를 어디서 가져와 반론을 펴는 건 자네의 상대성 이론을 물고 늘어졌던 자들과 다를 바 없지 않을까?”

 

그러나 아인슈타인이 하이젠베르크에게 준 결정적 영향이 있었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하이젠베르크가 양자의 운동을 뉴턴의 물리학으로 측정할 수 없는 상황 앞에서 고민할 때 떠오른 것은 아인슈타인의 다음과 같은 말이었다. “우리가 무엇을 관찰할 수 있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건 이론이라네.” 새로운 이론이 있어야 이전의 이론으로는 인식할 수 없는 세계가 명확하게 알아볼 수 있다는 뜻이었다. 하이젠베르크 이론의 탄생이 가능해진 것이다.

 

하이젠베르크의 스승이자 양자역학의 대가인 닐스 보어는 아인슈타인의 과학사적 성취에 대해 높이 평가하면서도 거기서 한 걸음 더 나가지 못한 모습을 아쉬워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으로 우리는 시간이 모두에게 절대적으로 동일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지 않은가. 가만히 있는 사람과 움직이는 사람 사이에 시간의 ‘동시성’은 존재하지 않아. 같은 시간인데 누군가에게는 느리게, 누군가에게는 빠르게 간다는 것은 과학이 객관성을 넘어서는 주관성의 요소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야. 양자역학은 이 주관성의 영역이 급진적으로 확장되는 내용을 담고 있어.”

 

빛은 입자와 파동의 두 가지 존재 양식 또는 운동의 형태라는 건 중고교 시절 과학시간에 배워 알고 있는 바다. 문제는 양자의 운동에 관계된 위치와 속도를 계산하려고 관찰하는 순간 관찰자의 시선이나 관찰도구의 차이가 개입해서 양자 운동이 그 궤도를 달리하게 되는 현상이 생기고 이는 객관적 측정의 한계를 넘는 차원이라는 점이다.

 

이 관찰자의 시선이라는 의식의 주관성을 담아내는 과학이론은 완전히 다른 이론 또는 패러다임을 요구하는 작업이었다. 1962년 《과학 혁명의 구조》라는 책으로 전 세계에 충격을 토마스 쿤이 지금은 수도 없이 쓰이고 있는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말로 과학사의 혁명을 짚어낸 까닭도 그런 의미다.

 

- “패러다임 전환의 혁명”

 

 

하나의 새로운 과학적 발견이나 사유가 전폭적으로 받아들여지면 그것이 과학자들 사이에 집단적이고도 무의식적인 사유방식이 되지만, 그 한계에 계속 머물러 있는 한 그 다음 단계의 진전은 어려워진다. 이점을 지목한 토마스 쿤은 바로 그 무의식적으로 집단화된 지배적 사유방식을 뛰어넘어 전환의 틀을 만들 때 과학혁명은 가능하다고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과정은 그리 쉽지 않다. 하나의 이론이 성립되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면 그 권위가 워낙 막강해지기 때문이다.

 

경쟁과 자연선택으로 생존한 생명체의 유전자가 계승되어 진화의 길을 연다는 다윈의 이론은 초기의 반발을 넘어 정론으로 굳어져 이에 도전하는 것은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상황이 된다. 한 세대가 획득한 형질도 진화의 과정에서 유전될 수 있다고 본 라마르크의 이론은 다윈의 이론으로 매장되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획득형질유전이 “후생유전학(Epigenetics)”에서 '라마르크의 반격'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주목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에 더하여 다윈의 주장과는 달리 오랜 시간의 축적만이 아니라, 고생물학의 발전에 따라 급작스러운 변동에 따른 진화도 존재한다는 것을 이제는 알게 되었다. 진화과정에서 이른바 “잃어버린 고리”를 찾을 필요가 없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지구는 지질학적 구조물을 넘는 하나의 거대한 생명공동체의 조직이라는 러브록(Lovelock)의 가이아(Gaia) 이론은 1970년대에는 이름없는 재야 과학자의 허무맹랑한 신화적 주장으로 폄하되었으나 이제는 생태주의의 가이아 시스템 이론으로 정착되었다.

 

진화가 경쟁의 원리에 기반한다는 다윈의 주장을 넘어서 단세포의 협력적 공생을 통해 새로운 진핵세포로 진화한다는 린 마굴리스(Lynn Margulis)의 내면적 공진화이론(endosymbiotic theory of evolution)은 현대 진화생물학의 가장 중요한 이론적 발전으로 평가된다. 다윈 이후의 다윈인 셈이다.

 

기계적 세계관에 묶여 있는 뉴턴 물리학의 패러다임을 생명의 역동성을 가진 패러다임으로 바꾸어 자연의 진실을 탐구하는 프리초프 카프라는 또 어떤가? “형태공명(Morphic resonance)”이라는 생소한 개념이나 에너지 장에서 벌어지는 운동을 주목하면서 텔레파시의 생물학적 근거까지 접근해가는 루돌프 셀드레이크 등에 이르면 과학사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이루말할 수없이 풍부해지고 있다.

 

이들과 더불어 진화의 주체적 의지를 강조하는 브루스 립튼같은 경우도 그 발상의 창조적 경이로움은 학습할 바가 적지 않다. 이러한 사유의 발전은 그렇다면 어떻게 가능해질까?

 

- 담대한 용기, 촛불혁명의 패러다임

 

 

하이젠베르크의 자전적 이야기를 통해 양자역학의 역사를 정리한 《물리학과 그 이후를 넘어(Physics and Beyond)》는 그가 스무살이 막 되려는 1920년부터의 양자역학 논쟁사를 담고 있다. 놀라게 되는 것은 그 나이의 하이젠베르크가 가진 인문적 토대의 깊이와 함께 그의 뛰어남을 알아본 스승들의 출현 그리고 이들과의 격의없는 대회, 토론들이다.

 

무명의 청년에 불과한 하이젠베르크는 연령차도 20년 이상 나는데. 이미 당대의 세계적 학자들인 닐스 보어. 아인슈타인, 쉬레딩거 등과 때로 산책을 하고 때로 며칠 함께 지내면서 인간적 사귐과 함께 경계를 허무는 치열한 논전을 펼친다. 단지 과학만이 주제가 아니다. 정치, 역사, 음악, 종교, 철학....끝이 없다. 이게 100년 전인 1920년대였다.

 

진화는 생물학적 진화만을 뜻하지 않는다. 의식과 지성의 진화가 도리어 가장 중요하다. 진화는 수동적 적응이나 또는 환경에 의해 선택당해 생존하는 것을 넘어서 한계상황을 뚫고 가는 주체적 힘이다. 이 힘을 가진 존재가 새로운 생존의 방식을 발명하고 새로운 생각의 패러다임을 창출해내며 새로운 시대를 열어나간다.

 

사유의 혁명을 일깨우는 교육이 “진화의 창조성”을 이끌어 내는 법이다. 세대의 차이를 뛰어넘어 역사적 경험의 공유와 이에 대한 혁명적 패러다임의 창출하는 집단적 노력없이 미래는 열리지 않는다.

 

거침없는 “담대한 용기”를 덕목으로 삼는 사회만이 희망을 현실로 만든다. 촛불혁명이 담은 철학적 의지는 다름아닌 이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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