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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역사를 말하다] 두 개의 철령

고려강역 이야기③

 

 

 

일본인 식민사학자들의 대 사기극

 

한국사에서 철령(鐵嶺)은 두 개가 있다. 하나는 함경남도 안변에 있는 철령으로서 광해군 때 인목대비 폐모에 반대하던 이항복이 북청(北靑)으로서 유배가면서 “철령 높은 봉에 쉬어 넘는 저 구름아/고신원루를 비삼아 띄워다가/님계신 구중심처에 뿌려본들 어떠리”라고 읊었던 그 철령이다. 다른 하나는 지금의 중국 요녕성 심양 남쪽의 진상둔진 봉집보(奉集堡)에 있는 철령이다. 고려 우왕 14년(1388) 명나라에서 봉집보에 철령위를 설치하려 하자 우왕과 최영이 이 땅은 선조 대대로 물려받은 고려강역이라면서 요동정벌군을 북상시켰던 곳이다. 함경도 철령은 ‘쇠로 만든 관문’이라는 뜻의 철관(鐵關)으로 불렸을만큼 험준한 요새였다. 조선에서 편찬한 《신증동국여지승람》의 회양도호부(淮陽都護府)조에 함경도 철령에 대해 “(철령은)회양도호부의 북쪽 39리에 있는데, 석성(石城)의 남은 터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목은 이색의 아버지였던 이곡(李穀:1298~1351)은 “철령은 우리나라 동쪽에 있는 요해지(要害地)인데 이른바 한 사람이 관문에서 막으면 일만 사람이 덤벼도 열지 못한다. 그래서 철령 동쪽의 강릉(江陵) 여러 고을을 관동(關東)이라 한다.”고 말했다. 이 함경도 철령은 명나라가 철령위를 세우려던 곳과 전혀 관계가 없는 곳이다. 그런데 이케우치 히로시(池內宏), 쓰다 소키치(津田左右吉), 이마니시 류(今西龍) 같은 일본인 식민사학자들은 만주에도 철령이 있고 함경도에도 철령이 있는 것을 이용해 만주 철령을 함경도 철령으로 바꿔치기 하는 사기극을 구상하고 실천했다. 명나라에서 철령위를 설치하려던 철령이 만주 철령이 아니라 함경도 철령이라고 우겼던 것이다. 철령에 대해서 조금만 공부하면 초등학생도 사기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는 이 사기극을 아직도 한국 사학계를 장악한 강단사학자들이 추종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현재 사용하는 검정 교과서는 명나라에서 설치하려던 철령위를 함경도에 있는 것으로 서술해서 국민들을 속이고, 미래 우리 사회의 주역인 중·고교생들에게 씻지 못할 죄악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중국 백도백과가 말하는 철령위의 위치

 

명나라가 철령위를 설치하려던 철령이 요녕성에 있었다는 사실은 다름 아닌 중국측 자료들이 말해주고 있다. 먼저 세계최대의 온라인 백과사전이라고 선전하는 중국의 《백도백과(百度百科)》는 철령의 역사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명나라 때 은주(銀州)에 철령위를 설치했다가 명 홍무(洪武) 26년(1393)에 철령위를 심양과 개원(開原) 사이에 있던 옛 은주 땅으로 이주했다. (철령위의) 남부 강역은 요동도지휘사 철령위에 소속되었고, 서부는 요하의 부여위(扶餘衛)와 겹쳐서 속해 있었고, 북부는 삼만위(三萬衛)에 속했는데, 겸하여 한왕(韓王) 주송(朱松)을 철령, 개원에 봉했다.”

 

명 시조 주원장의 홍무(洪武) 21년은 곧 고려 우왕 14년인 서기 1388년인데, 이때 은주(銀州)라는 곳에 철령위를 설치했다가 고려에서 요동정벌군을 북상시키는 등 강력 반발하자 1393년에 심양과 개원 사이에 있던 옛 은주 땅으로 이주했다는 내용이다. 은주(銀州)라는 곳이 어디인지만 찾으면 철령위의 위치를 쉽게 알 수 있다. 《백도백과》는 “당 현종 개원 원년(713) 발해 대씨(大氏)가 이 지역을 차지해서 부주(富州)로 삼았다”고 말하고 있다. 나중에 명나라에서 철령위를 설치하는 지역은 대진(大震:발해)에서 부주로 삼았다는 것이다. 《백도백과》는 “거란 신책(新冊) 2년(917)에 요(遼) 태조가 이 땅에서 은를 제련했기 때문에 부주(富州)를 은주로 바꾸었는데, 요나라 때는 강역의 대부분이 동경도(東京道) 요양부(遼陽府)에 속했다.”라고 말하고 있다.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 태조가 부주(富州)에서 은을 제련했기 때문에 은주(銀州)라고 바꾸었다는 것이다. 이는 모두 지금의 요녕성에서 벌어졌던 사건들에 대해서 적고 있는 것으로 함경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심양 남쪽부터는 고려땅이라는 《명사》 〈지리지〉

 

철령위에 대해서 가장 정확한 사서는 명나라의 정사인 《명사(明史)》일 것이다. 《명사》 〈지리지〉는 ‘철령위’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철령위는 홍무 21년(1388) 3월 옛 철령성에 설치했다. 홍무 26년(1393) 4월 옛 은주(嚚州)땅으로 이전했는데, 곧 지금 다스리는 치소다. 철령은 서쪽으로 요하(遼河)가 있고 남쪽으로 범하(汎河)가 있고, 또 남쪽으로 소청하(小淸河)가 있는데 모두 흘려서 요하로 들어간다.(《명사》 〈지리지〉 철령위)」

 

《명사》 〈지리지〉은 철령위 서쪽에 요하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요하는 요녕성을 가로지르는 강이다. 함경도 안변 서쪽에는 요하고 범하고를 막론하고 강 자체가 없다. 철령 서쪽에 요하가 있다는 구절 하나만으로도 철령위는 함경도 안변이 아니라 요하가 흐르는 요녕성에 설치했음을 알 수 있다.

 

「또 (철령) 남쪽에 의로성(懿路城)이 있는데, 홍무 29년(1396) 이곳에 의로천호소(懿路千戶所)를 설치했다. 또 범하성(范河城)이 철령위 남쪽에 있는데, 범하성(汎河城)이라고도 부른다. 정통(正統) 4년(1439) 이곳에 범하천호소(汎河千戶所)를 설치했다. 동남쪽에 봉집현(奉集縣)이 있는데, 곧 옛 철령으로서 고려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홍무 초년에 봉집현을 설치했다가 곧 폐지했다(《명사》 〈지리지〉 철령위)」

 

《명사》 〈지리지〉에서 말하는 주요 내용은 셋이다. ①철령위 서쪽에 요하가 흐른다. ②봉집현이라는 곳이 주원장이 홍무 21년(1388) 원래 철령위를 설치했던 곳인데, 고려에서 반발하자 1393년 지금의 철령시 은주구로 옮겼다. ③봉집현이 고려와 경계를 접하고 있는 곳이다. 곧 고려와 국경을 이루고 있던 곳이 봉집현이다. 따라서 이 봉집현이 어디인지를 찾으면 명나라에서 설치했던 철령위를 정확하게 찾을 수 있다.

 

심양 남쪽부터 고려의 강역

 

중국의 《역사사전(歷史詞典)》은 봉집현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당(唐)나라 발해국에서 집주(集州)를 다스리기 위해서 설치했다. 치소(治所:다스리는 곳)는 지금의 요녕성 심양시 동남쪽 봉집보(奉集堡)이다. 금(金)나라에서는 귀덕주(貴德州)에 소속시켰는데, 원(元)나라에서 폐지시켰다. 명나라 홍무 초에 다시 설치했다가 얼마 후 폐지시켰다.”

당나라 발해국에서 설치했다는 것은 동북공정에 따라서 발해가 중국의 지방정권이라고 우기는 것에 불과하다. 봉집현은 대진(발해)에서 설치한 집주를 다스리던 곳인데, 진상둔진(陳相屯鎭) 탑산각(塔山脚) 아래에 있는 곳이다. 현재 중국의 여러 사전들은 《명사》 〈지리지〉에 나와 있는 내용, 즉 봉집현 남쪽부터는 고려 강역이었다는 사실은 슬그머니 빼 놓고 ‘당나라 소속의 발해국…’ 운운하는 것이다.

필자는 몇 년 전 심양 남쪽의 봉집현 자리를 어렵게 찾아간 적이 있다. 처음에는 찾지 못해서 헤매다가 두 번째 답사 때 겨우 찾은 지역이다. 중국 심양시에서 비록 수풀 속에 숨겨두었지만 봉집현 자리에 표지석을 세워놓은 것을 보고 놀란 기억이 새롭다. 중국학자들은 물론 당국도 심양 남쪽 봉집현이 옛 철령위 자리이고 이곳부터는 고려 강역이라는 사실을 알고 표지석까지 세워놓았다. 한국은 아직도 조선총독부 역사학을 추종하는 강단사학자들이 역사학계를 장악하고는 함경도 안변이 철령위라고 우기고 있다. 요녕성과 함경도를 구분 못하는 것은 물론 강원도 삼척과 경상북도 영덕·포항도 구분할 줄 모르는 강단사학자들이 왜곡한 《한국사교과서》를 지금도 사용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 나라는 나라다운 나라가 될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