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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행 칼럼] 팔레스타인이여 영원하라


 

 

"왜 어린 애들에게 미사일을 쏘아 죽이려 하는 거죠? 정말 불공정합니다.”(팔레스타인 소녀 나딘 압델 타이프가 지난 15일 중동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점점 팔레스타인의 숙명에 익숙해지고/ 우리 삶이 감옥이 되어 갔다는 것/(....) 나는 죽는 것이 두렵지 않아요/ 이미 그때 내 삶은 죽음과 손잡고 있었으니까"(2011년 출간된 정한용 시인의 『유령들』에 실린 시 '레퀴엠' 중에서)

 

"이 무지막지한 이스라엘 군인 놈들아/ 내 자식 내 남편 내놓아라./

이 갈갈이 찢어 죽일 아브람, 모세, 다윗, 솔로몬의 새끼들아/ 통곡의 벽 안쪽은 그 벽 밖의/ 통곡이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이 외신은 울음의 전도체인가, 아닌가"(1983년 출간된 황지우 시인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에 실린 시 '베이루트여, 베이루트여' 중에서)

 

2021년, 2011년, 1983년. 팔레스타인 소녀와 한국의 두 시인이 40년이라는 시간 격차 안에서 절규한 이 연도들은 무엇을 뜻할까? 너무 명백해서 묻는 것 자체가 부질없다. 팔레스타인 상황은 그만큼 전혀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하마스가 지난 20일(현지 시각) 휴전하기로 합의했지만 합의서는 두루마리 화장지와 다름없다. 절대 강자인 이스라엘에 의해 얼마든지 변기에 내버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11일 간의 교전 동안 팔레스타인 주민 240여 명이 숨졌고 피난민 7만여 명이 발생했다. 이스라엘 피해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 교전이나 전쟁이란 말은 맞지 않다. 서방 언론이 진실에 눈감고 내민 양비론적 단어일 뿐이다. 무기와 환경의 절대 우위 속에서 행한 무자비한 폭격을 학살 말고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국제 사회의 압박이 없었다면 2000여 명이나 숨진 지난 2014년의 '50일 전쟁'이 재현됐을 지도 모른다.

 

프랑스 유수 일간지 르몽드의 자매지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가 발행하는 르몽드 세계사 지도(2008년도)는 이스라엘이 지난 1945년 이래 팔레스타인의 대부분을 점령했음을 한 눈으로 보여준다. 대다수였던 팔레스타인 영토가 이제 거꾸로 가자지구와 작은 몇 개의 자치지구를 제외하고 이스라엘 영토가 된 것이다. 팔레스타인은 독안에 든 쥐가 되어 이스라엘의 처분을 기다리고 있는 형국이다.

 

나치에 의해 유태인 600만 여명이 악랄하게 학살을 당한 것은 오래 전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 후 무방비 상태인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끊임없이 학살하고 있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아주 나쁜 사례를 세계 시민 앞에서 시위하듯 남발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왜?

 

인간 이성을 믿을 수 없다는 또 하나의 사례로 회자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는 피해자가 폭력을 극복하지 못하고 내면화하면 더 큰 폭력의 활화산이 된다는 굵직한 사례이기도 하다. 이 교훈은 아프고 치명적인 것이다. 김수영 시인은 시 '하……그림자가 없다'에서 "(우리들의 적은) 우리들 곁에 있다"고 절규한다. 개개인이나 매 나라가 폭력이나 민주주의의 위험 요소를 스스로 경계하지 않으면 나락에 빠진다는 경고다. 여기서 이스라엘에게 뼈 때리는 말 한마디 던질 수 있을 것이다. '학살을 일삼는 이스라엘 당신들의 적은 이스라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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