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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눈과 귀를 즐기시라. 변화의 권력을 쥐리니

⑲ 크루엘라 - 크레이그 질레스피

크루엘라는 원래 빌런(villain), 곧 악당이다. 적어도 1996년에 나온 글렌 클로스 주연의 영화 ‘101 달마시안’에서는 그랬다. 도디 스미스가 쓴 동명 원작소설에서는 더했다. 그러나 새로 나온 영화 ‘크루엘라’는 크루엘라가 크루엘라가 되기 전, 에스텔라 시절부터의 얘기다. 그러니까 착했을 때 얘기라는 것이다. ‘크루엘라’는 또 한편의 스핀오프(spin-off), 원작의 등장인물 한 명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꾸민 영화이다.

 

사람들은 선한 자 혹은 그들의 미담(美談)에는 그리 관심이 많지 않다. 물론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다. 여기서 상대적이란, 악당을 두고 하는 얘기다. 놀랍게도 사람들은 악당 이야기에 매료되는 경향을 보인다. 예컨대 배트맨 시리즈를 두고도 사람들은 조커 캐릭터가 더 흥미롭다고 생각한다.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악은 어디에서 오는지, 악의 평범성이란 과연 무엇인지 등등 보다 철학적인 접경을 오고 간다. 그래서 아예 ‘조커’라는 영화까지 나왔다. 영화 ‘크루엘라’도 같은 맥락이다.

 

 

도대체 이 여자, 에스텔라가 왜 미친 악녀가 됐냐는 것이다. 그 악에는 꼭 악만이 있는 것이냐, 혹은 선한 구석이라곤 전혀 남아 있지 않는 것이냐, 아니면 선한 것을 사실은 위장하고 있는 것이냐, 그것도 아니면 선과 악은 원래 공존이 가능한 것이냐 등등을 물어보고 답하고 있는 셈이다. 영화 ‘크루엘라’는 그 사연과 개인사가 재미있게 펼쳐진다. 스토리가 아주 탄탄하다. 이런 점에서는 아직 할리우드를 따라가기가 힘들다. 무엇보다 의상과 분장, 미술 등등 그 물량 공세의 삼각 파고가 어마어마해서 따라갈 엄두를 내지 못하게 만든다.

 

에스텔라는 가난하지만 착한 엄마 밑에서 컸다. 엄마 캐서린(에밀리 비샴)은 아무리 힘이 들어도 딸을 사립학교에 보낸다. 마치 거기가 아이의 신분에 맞는 것처럼. 그러나 에스텔라는 너무 말썽을 부린다. 아이는 퇴학을 당한다. 실망한 엄마는 에스텔라를 데리고 런던에 가 살 생각을 한다. 엄마는 아이와 함께 런던으로 가던 도중 한 호화 저택(과거 귀족의 성)에서 열리고 있는 파티에 잠깐 들르려고 한다.

 

엄마 몰래 그녀를 따라 간 에스텔라는 성의 주인인 남작 부인이 키운다는 달마시안 개 세 마리에 쫓긴다. 사납게 달려들던 개들은 몸을 살짝 피한 자신 대신 엄마에게 달려들게 되고 결국 그녀를 성 절벽 밑으로 밀어낸다. 에스텔라는 자신이 엄마를 죽인 셈이라며 심한 자책감에 시달린다.

 

 

영화는 여기까지의 전반부와 에스텔라가 런던에서 나중에 죽마고우가 되는 재스퍼와 호레이스를 만나 핑거스미스, 곧 소매치기 생활을 하다가 백화점 청소부 생활을 거쳐 버로니스라는 패션계 최고의 디나이너(엠마 톤슨) 밑에서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게 되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버로니스가 과거 엄마가 찾아갔던 남작 부인이라는 것, 그리고 그녀가 엄마의 죽음에 연관이 돼 있다는 것, 무엇보다 자신에게 분노와 복수의 악마성이 철철 넘친다는 것을 깨닫고 복수극을 펼쳐 가는, 그래서 에스텔라에서 크루엘라(엠마 스톤)로 변신하는 후반부의 얘기로 액셀을 밟는다.

 

영화는 시종일관 입이 떡 벌어질 만큼 화려한 패션의 감각으로 수를 놓는다. 저 의상을 만든 디자이너들은 누구인지, 저걸 만들려면 얼마나 많은 돈을 들였을지 혀를 내두르게 한다. 그만큼 화려함의 끝판왕을 달린다. 특히 크루엘라가 버로니스의 패션 쇼 파티에 와서 패션 디자인 배틀을 하는 일련의 장면에서 쓰레기차가 쏟아부어 놓은 것들이 사실은 크루엘라가 입은 드레스의 장식들이라는 설정, 그 가비지 룩(garbage look)의 장면은 패션이 영화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상상력의 예술이라는 점을 뽐내고 있다.

 

그런 장면들이 눈에 쏙쏙 들어온다. 무엇보다 크루엘라의 헤어 스타일이 눈에 확 들어온다. 그녀는 머리의 양쪽이 각기 다른 색깔로 돼있는데(염색을 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태어난 것이 설정이다.) 한쪽은 흰색이고 또 다른 한쪽은 검은 색이다. 달마시안의 흑백 무늬를 연상케 한다. 원작과 그렇게 이음새를 놓는다.

 

 

크루엘라의 복수극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관객들을 유도한다. 영화를 보면서는 에스텔라의 엄마 캐서린이 사실은 귀족 출신이었으며 그녀 역시 뛰어난 패션 감각을 지닌 천재였지만 버로니스에게 뭔가를 탈취당했거나 아니면 이 탐욕스런 남작 부인이 엄마의 작품을 몰래 훔쳐 성공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게 한다.

 

크루엘라의 복수는 그래서, 정석대로 엄마의 분과 한을 풀어주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럴 경우 에스텔라-크루엘라가 지니는 선악의 이중성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영화는 그야말로 기상천외한 선택을 한다. 그게 아주 재미있다. 나름 기발한 선택을 한 셈이다. 그 점을 주목해서 봐야 한다.

 

할리우드는 이렇게 오락성이 강한 작품에서조차 선대(先代) 혹은 기성세대의 흐름을 완전히 일소(一掃)시키려는 의지를 보인다. 혈연관계이든 아니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기성의 것은 싸그리 없애라는 것이다. 모두 부정함으로써 모두 긍정할 수 있는 것을 만들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새로운 세대에 맞는, 새로운 시대를 열라는 것이다.

 

엠마 스톤과 엠마 톰슨의 연기는 그야말로 불꽃 대결이다. 전편에 흐르는 OST 곡들도 엄청난 수준이다. 60년대 니나 시몬과 70년대 도어즈에서 80년대 티나 터너, 90년대 슈퍼 트램프와 비지스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주옥들로 음악의 수를 놓는다. 눈을 즐기시라. 그리고 귀를 즐기시라. 즐기는 자만이 세상을 변화시킬 권력을 얻는다. 에스텔라가 됐든, 크루엘라가 됐든 만고의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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