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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청춘 예찬(靑春禮讚)

 

나는 고개 들어 3층 학원을 바라본다. 둘째 아들이 공부하고 있는 학원이다. 학원의 불빛이 아직은 밝다. 아들이 학원을 마치고 내려오려면 10분쯤 남았다. 나는 항상 10분 정도는 여유 있게 도착한다. 학원 끝나고 아들이 내려오면 바로 픽업해서 집에 데려가려는 셈이다. 피곤한 아들을 단 1분이라도 빨리 집에 데려가 쉬게 하고 싶은 욕심이다. 나는 핸드폰을 켜서 김윤아의 ‘길’이라는 노래를 듣는다.

 

‘세상 어딘가 저 길 가장 구석에 갈 길을 잃은 나를 찾아야만 해.’

 

노래 가사가 요즘 나의 처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즐겨 듣는 노래가 되었다. 그때 신호를 받고 탑차가 들어온다. 아마도 생선이나 야채를 배달하는 것 같은 냉동 탑차다. 익숙하고 묘한 동질감을 갖게 만드는 차다. 그동안 관찰해보니 탑차의 주인은 나와 같은 학부모였다. 학원에서 나오는 그 딸의 교복이 아들과 같았다. 어쩌면 아들과 같은 반인지도 모른다는 상상도 해 보았다. 탑차는 내 차를 지나쳐서 학원 앞에 바짝 차를 붙인다. 그때 딸이 아빠를 향해 손을 흔들고 탑차 조수석 문을 열고 올라타서 아빠에게 하이파이브를 한다.

 

보이지 않아도 그 아빠의 으쓱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나는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의 냉동 탑차가 전혀 부끄럽지 않은 딸의 거침없는 웃음이 너무나 부러웠다. 기특했다. 저런 딸을 며느리 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인생 처음으로 회사에서 받은 중형 승용차를 몰고 왔다. 나처럼 학원 마치고 나오는 자식을 픽업하러 온 차들이 주변에 많이 있었다.

학원을 마친 아들이 촐랑촐랑 뛰어와 뒷문을 열고 차에 탄다.

 

“아들 고생했다.”

“어.”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아들에게 묻는다.

“아들! 장래 희망은 뭐야?”

“어 안정된 직장.”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답이 나온다. 나는 아들에게 이런저런 잔소리를 한다.

‘야 인마, 안정된 직장이 뭐냐?’ ‘꿈이 있어야 될 거 아니냐?’ ‘청춘이라는 것이 뭐냐?’ ‘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세상을 바꿀 만한 야망이 있어야 되는 거 아니냐?’ ‘뭔가 창조적인 인생을 살아라.’

 

아들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 그 틈에 모바일 게임을 하고 있다.

나의 젊은 시절 좌우명은 청춘예찬(靑春禮讚)이었다. 그런 면에서 나는 혜택 받은 세대다. 청춘을 노래할 수 있었다. 세상을 바꾸어 보려고 했다. 비록 실패했지만 유토피아를 현실세계에 구현해보고자 했다. 감히 혁명을 꿈꾸었다. 내 세대의 시대정신은 민주화였다. 독재를 향해 바위에 달려드는 돌멩이처럼 청춘을 살았다. 그래서 형식적인 민주화에는 성공했다. 그러나 우리 세대를 바라보는 아들 세대의 눈길이 싸늘하다. 청년들은 (연애, 결혼, 출산 포기)에서 5(+내 집 마련, 인간관계), 7(5+꿈, 희망) 포기로 진화하고 있다. 나는 청년들이 꿈을 포기한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

 

나는 아들 세대에 나의 모든 것을 물려주고 일찍 죽고 싶다, 그렇게 해서라도 아들 세대들이 ‘청춘예찬’ 찬가를 부르게 되기를 바란다. 나는 민주화 세대다. 그것이 내 세대의 숙명이다. 더 나은 시대정신은 아들 세대가 이루기를 바란다. 나는 나의 남은 인생도 민주화를 이루기 위하여 살고 싶다. 형식적인 민주화가 아니라 이 사회의 근본적인 민주화를 위해 노력하다가 그렇게 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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