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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칼럼] 감히 구국을 논하지 말라

 

학기가 끝나고 성적을 입력하면서 젊은 친구들에 대한 교육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다행스럽게도 이번 ‘임시 교편’ 과정에서 좋은 학생들을 만났다. 한 번도 출석에 빠지지들 않았고 과제를 거른 적도 없으며 비대면 수업이지만 학습 태도들도 좋았다. 모두들 훌륭한 점수를 받기에 충분했다.

 

과제 명은 ‘올리버 스톤의 영화로 본 미국 현대사 1954~1974’이다. 올리버 스톤 감독이 변방의 한국에서 자신의 영화가 역사 공부에 쓰이고 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영화감독으로서 나름 자부심을 느낄 만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영화 중 ‘플래툰’과 ‘7월 4일생’ 그리고 ‘하늘과 땅’은 베트남전쟁사와 그와 연관된 미국 국내사를 들여다보는 데 있어 최적의 텍스트다. 특히 ‘플래툰’은 미군에 의한 미라이양민학살사건을 그리고 있고 이로 인해 미국 국내에서 반전 운동이 어떻게 확산되는지, 거기에 CBS TV 기자이자 앵커였던 월터 크롱카이트 등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해 준다.

 

올리버 스톤의 ‘베트남 3부작’은 통킹만 사건에서부터 북베트남과 남베트남 반정부 게릴라가 연합한 구정 大공세, 치열했던 다낭 전투 등 전쟁 전사(全史)를 복기하며 그려 낸다.

 

한편 그의 또 다른 영화 ‘JFK’와 ‘닉슨’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쿠바 미사일 사태를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고 또 그러기 위해서는 1959년의 쿠바 혁명 과정과 흐루시초프 시대의 소련을 뒤져 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역사는 씨줄 날줄로 연결된다. 그 모든 일들은 존 F. 케네디의 암살이 누구의 손에 의해서 자행됐는지 린든 B. 존슨 대행 체제에서 어떻게 베트남전은 확전 됐고 또 어떻게 말콤 X가 살해되는 길로 연결됐으며, 민권법(흑인 참정권을 전면 보장하는 법안)이 통과됐음에도 불구하고 마틴 루터 킹은 왜 앨라배마 셀마 시에서 평화행진을 벌였는지, 그러던 그가 왜 결국 암살될 수밖에 없었고 같은 해 로버트 케네디는 또 왜 죽어야 했는지를 연결, 연결, 또 연결해서 공부해야 한다. 트로츠키의 영구혁명론에 영향을 받은 체 게바라가 아프리카와 볼리비아를 다니며 또 다른 혁명을 꿈꾸다 사살되는 과정은 덤이자 외전(外傳)의 역사 이야기다. 역사는 방법이 없다. 특정 연대와 사건의 기록들은 무조건 외워야만 한다. 역사는 암기를 통해 기초가 형성되며 그럼으로써 전체 드라마를 그려 낼 수 있게 된다. 역사의 나무만 보느냐, 숲까지 다 볼 수 있느냐는 어쩌면 학생보다는 선생의 몫이다. 그렇게 가르치고 인도해야 한다.

 

학생들은 처음 듣는 지명(심지어 니카라과 같은 국가 이름), 처음 들어 보는 사건(이란-콘트라 사건), 처음 알게 된 인물(다니엘 오르테가나 올리버 노쓰)이 많다고들 했다. 무엇보다 이런 일들을 꼭 알고 살아야 하는 건지 몰랐다고 했다. 그러나 배워 놓고 보니 앞으로는 더욱 알고 살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했다. 그런 지점에서 이번 ‘특별 학기’는 꽤나 성공적이었다는 생각이다. 역사적 인지 능력을 시공간적으로 확대시키는 것이야 말로 지금 젊은 세대들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 되기 때문이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박근혜로 이어지는 근 7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남한에서 이루어진 반공 역사관은 한편으로는 이른바 순화교육을 동시에 진행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김구와 윤봉길의 역사적 거사(巨事)에서 전투적이고 공격적인성향 혹은 그 정신을 숨기기에 급급한 면이 있다. 김원봉·김산 등은 아예 삭제시켰다. 그들을 공산주의자로 둔갑시켜 그 역사성을 거세시켰다. 그러나 이들 모두 아나키스트이자 ‘극렬’ 테러리스트였다. 그들의 ‘테러’가 없었다면 한국의 역사는 씨가 말랐을지도 모른다. 일제에 의해 완전히 편입됐을 가능성이 높다.

 

폭탄 테러를 위해 택시를 불러 떠나는 윤봉길을 향해 김구가 말했다고 한다.

“지옥에서 만납시다.”

학생들은 그때의 사건을 넘어 김구와 윤봉길의 마음속에 일던 그 광풍(狂風)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역사의 바람에 머리가 흩날릴 수 있어야 한다.

 

김구와 김원봉, 윤봉길의 격한 투쟁이 독립의 정신과 애국의 정신을 이어가게 했다. 그런데 남한의 오랜 반공 정권은 폭탄을 던지던 윤봉길의 실천적 모습보다는 그의 생애 등등이나, 그가 파평 윤씨 가문 출신이라는 점 등등 일상적 이미지로만 그리고 남기는데 급급했던 감이 적지 않다. 우리가 가슴에 새겨야 하는 것은 폭탄을 던지는 순간의 그의 행동, 그의 마음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것은 일종의 순화된 애국주의다. 국민을 그쯤에서 멈추게 하려는 의도된 역사교육이다.

 

윤석열이 윤봉길 기념관에서 대권 도전 선언을 한 것을 그냥 지나치면 안 될 일이다. 이건 역사를 욕보이는 일이다. 역사는 한번 욕보이면 버릇처럼 계속 욕보이게 되고, 결국 왜곡되기 때문이다.아이들이 친일파도, 혹은 친일적 사고를 가진 사람도, 윤봉길 기념관을 아무렇게나 사용할 수 있는 걸 보면서 기념관은 이제 그냥 공원이나 강당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윤봉길이 보여 준 그 격렬한 독립운동의 정신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독도가 우리 땅이라고 해도 그렇게 되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 되겠는가. 역사를 곡해시키려는 자, 구국을 논하지 말라. 구역질이 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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