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할 때 코를 풀면 휴지가 새카맣습니다. 눈이 따끔거리는 건 말할 것도 없고요. 건설업을 하면서 분진을 아예 안 마실 수는 없겠지만 건강이 너무 걱정됩니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 공사현장으로 출근하는 박모(49)씨는 오전 7시부터 오후 4시까지 작업을 한다.
박씨가 일하는 지하 4층 작업장은 희뿌연 먼지가 안개처럼 흩날렸고, 비상용 소화기 위에는 먼지가 켜켜이 쌓여 있었다. 쉴 새 없이 용접 불꽃이 튀면서 매캐한 가스 냄새도 퍼졌다.
대규모 건설 공사가 있을 때마다 인근 주민들이 '먼지가 심각하다'는 민원을 제기하고 있지만, 정작 현장에서 일하는 건설노동자들은 유해 물질에 고스란히 노출돼있다.
7일 서울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서울 대기오염원의 22%는 공사장 등에서 발생한 날림 먼지였다. 하지만 공사현장에서 노동자에게 보호 장구가 비치된 경우는 드물었다.
박씨는 "경력 10여년 동안 원청에서 고글이나 마스크를 지급받은 경우는 한 번도 없다"면서 "보호 장구를 사기 위해 원청에 안전관리 비용을 청구해도 소귀에 경 읽기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마스크를 챙겨 쓰고 얼굴 전체에 두건을 두르지만 역부족"이라며 "요즘처럼 폭염이 심하면 이조차 땀에 젖어 아무 소용이 없다. 방진 마스크 등 전문 장비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더 열악한 현장도 많다"며 "소규모 현장은 휴게실도 없어 박스 한 장만 깔아놓고 분진을 그대로 마시며 쉬는 경우도 부지기수"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한국건축시공학회지에 실린 '건설현장의 비산먼지(분진) 발생실태에 관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건설현장 전문가 110명 중 56.4%는 현장의 비산먼지 상황이 심각하다고 답했다.
또 규모가 작은 공사현장일수록 비산먼지 관리 수준은 미흡한 것으로 조사됐다. 분진뿐 아니라 용접 작업 등에서 발생하는 유해가스나 냄새도 위험 요인이다.
관악구 지하 공사현장에서 1년간 일했던 건설노동자 이모(57)씨는 "용접작업 중 생기는 가스를 마시면 머리가 아프고 속이 울렁거린다"면서 "가스를 마시며 일하다 병원을 찾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씨는 "지하 현장에도 유해가스 배출을 위한 환풍구를 설치해야 하지만 번거롭다는 이유로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고 했다.
지난 5일 금천구 가산동 서부간선도로 지하차도 공사 현장에서는 작업자 3명이 아스팔트 작업 중에 생긴 냄새로 어지러움을 호소해 병원으로 이송되기도 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서울건설지부 관계자는 "건설현장의 미흡한 안전 조치는 다단계식 원·하청 구조와 불법하도급 등 여러 문제가 얽힌 결과"라며 "일시 감독처럼 형식적인 대책보다 법률 개정, 교육 등 장기적 노력을 통해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