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으로는 최고의 경지에 이르지 못해 올림픽 시상대에서 애국가를 듣지 못했지만 대신 서예 퍼포먼스를 통해 사회에 공헌하고 싶었습니다."
서예 행위예술가인 쌍산 김동욱(67)씨는 최근 연합뉴스 기자와 통화에서 이같이 말했다.
김씨는 독특한 옷을 입고 하얀 광목천에 커다란 붓으로 글씨를 쓰는 행위예술로 유명한 인물이다.
언뜻 남의 시선을 끌려는데 목적이 있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는 사회공헌, 애국심이란 일관된 주제를 갖고 서예로 행위예술을 해왔다.
그는 특히 국경일인 광복절을 앞두고서는 더 바빠진다.
누구도 시킨 사람이 없지만, 광복을 축하하는 행위예술을 벌여야 속이 시원하기 때문이다.
지난 12일에도 포항 북구 기계면 새마을운동발상지기념관 앞에서 대한독립만세란 글을 쓰는 서예 행위예술을 했다.
지난해 광복절을 앞둔 8월 13일에는 독도 선착장에서 서예 행위예술로 자신의 진가를 발휘했고 2019년 8월에는 돌에 '독도는 대한민국 땅'이라고 글씨를 새긴 전각작품을 공개했다.
그는 석가탄신일이나 크리스마스 등 각종 기념일에도 행위예술을 했지만 주로 국경일에 초점을 맞췄다.
특히 광복절 즈음에는 독도 수호 의지를 알리는 행사를 자주 해 일본 입국 비자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행위예술을 시작한 2005년부터 지금까지 약 1천700건의 행위예술을 했다. 독도에 가서 독도와 관련한 행위예술을 한 것은 모두 26회에 이른다.
그가 행위예술을 한 번 하려면 긴 광목천과 성인 키에 가까운 대형 붓, 먹을 준비해야 하고 함께 행위예술을 할 춤꾼과 기록을 남길 사진작가가 필요하다.
거기에 장소를 섭외하고 며칠 전부터 해당 지역에 가서 묵으며 준비를 해야 한다.
한 번 하는데 최소 100만 원이 들지만, 그는 오롯이 자비로 이런 행위예술을 한다.
행사 출연료를 받기도 하지만 젊은 시절 벌어놓은 돈이나 글씨를 써서 받은 돈으로 충당한다고 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서예를 전공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서예와 거리가 먼 체육인이었다.
중학교 시절 부산 동네 체육관에서 레슬링을 접한 뒤 어깨너머로 배운 레슬링으로 고교를 졸업한 뒤 경남 마산시청팀에 입단했다.
레슬링부가 있는 중·고교에서 엘리트 체육으로 선수 생활을 한 것이 아니라 방학 때 체육관에서 배우고 스스로 익혀 실업팀까지 입단했으니 나름대로 타고난 재능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국내에선 나름대로 전국체전에서 메달도 따고 국가대표도 했지만 당시 한국이 상대적으로 약한 중량급(82㎏) 선수로 뛰다가 보니 국제무대에 설 기회는 별로 없었다.
실업팀에서 활동하다가 은퇴한 뒤 한동안 서울에서 다양한 사업을 하며 돈을 모은 그는 문득 서예가 하고 싶어졌다.
김씨는 "고등학교 때도 신문지 깔고 붓으로 글을 쓰곤 했고 운동하거나 운동을 그만둔 뒤에도 학원에 가서 서예를 배웠다"며 "의류 관련 사업을 하면서 상당한 돈을 모으고 나서는 몸속에서 본격적으로 예술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2002년 대구예술대 서예학과에 입학해 4년 만에 졸업한 그는 서예 행위예술을 자신의 진로로 정했다.
평범한 전통 서예로는 존재감을 알리기 어렵다는 생각에서였다.
레슬링으로는 세계 최정상에 이르지 못한 아쉬움을 예술로 달래고자 하는 뜻도 있었고 운동을 한 터여서 몸이 부드럽고 행동이 커서 행위예술을 하기에 적합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올림픽 무대에서 애국가를 듣지 못한 대신 늘 '광복', '독립', '독도' 등 애국심을 강조하는 행위예술을 많이 해왔다.
어느덧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고 15년 이상 서예 행위예술을 한 만큼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종종 듣곤 한다.
그러나 그는 지금까지 쌓은 실적에 연연하지 않고 체력이 닿는 한 끝까지 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많은 사람이 알아주지 않아도 제가 하는 퍼포먼스로 조금이라도 애국심, 독도 수호 의지 등을 생각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면서 "내년에는 미국에서 퍼포먼스를 할 계획도 잡아두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