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훈(73) 씨가 내년 1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도 노동 현장에서 죽음이 이어지고 있다며 시행령 제정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구체적 고통'에 주목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시민단체 '생명안전시민넷' 공동대표인 김 작가는 20일 발표한 '개별적 고통을 생각하며'에서 "중대재해처벌법 발효를 기다리는 지난 1년 동안 노동자 800여명이 생업의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며 "노동 현장의 최하층부와 최전방부에서는 늘 절망적인 통곡이 터져 나왔지만, 이 울음소리는 널리 들리지 않았다"고 썼다.
그는 각계 지도자와 언론이 관심 갖는 '대형사고'와 산재처럼 거의 매일 반복되는 '소형사고'를 대조하며 "사고의 중대성을 등급 매기는 사회적 관행은 생명을 물량으로 취급해서 사물과 동일시하는 몰인간적 인식"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날마다 죽고 다치는 참사가 일상화되면 그 사태를 바라보는 인간의 감수성이 마비되어서 문제의 본질을 들여다보고 해결을 향해 나아가는 능력을 마비시킨다. 그렇게 집단정서가 형성되면 문제를 개선할 길은 영영 멀어진다"며 "이것이 중대재해처벌법의 입법과정의 갈등을 들여다본 저의 두려움"이라고 했다.
그는 "기업의 이윤은 사회 전체를 위한 소중한 자산이지만 지금 한국의 노동현실에서 벌어지는 죽음과 억압의 토대 위에 기업의 상부구조와 지속적 이윤을 건설할 수는 없다"며 "결코 진보와 보수의 정치적 대립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인간에게 어떠한 고통이 사실적으로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이해와 공감 없이 전체의 이익과 전체의 행복을 말하는 담론은 파시즘을 불러들이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김 작가의 글은 24일 열리는 국회 생명안전포럼 창립 1주년 토론회 '문재인 정부의 생명안전 정책 4년 평가와 과제'의 개회사로 작성됐다고 생명안전시민넷은 전했다.
올해 1월 국회를 통과한 중대재해처벌법은 제정 과정에서 '5인 미만 사업장 제외'나 '50인 미만 사업장 유예' 등으로 적용 범위가 축소돼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들이 반발했다.
최근에는 중대재해법의 구체적 내용이 담길 시행령을 둘러싼 논의가 진행 중이다. 노동계와 경영계는 사업주·경영자의 의무와 적용 범위 등을 두고 대립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