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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문제는 기본소득이다

 

사람들은 ‘송파구 세 모녀 사건’이라고 불렀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지난 26일 오후 9시 20분께 송파구 석촌동의 한 주택 지하 1층에서 이 집에 살던 박 모(60)씨와 두 딸 A(35) 씨, B(32) 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고 밝혔다. (…) 현장에서는 현금 70만 원이 든 봉투와 함께 '주인아주머니께,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메모가 나와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나는 왜 이 세 모녀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장애인 가족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머니가 노령연금을 받을 수 있는 나이도 아니고, 국민연금이 나올 시기도 아니고, 마땅한 직장조차 없었을 것이다. 차라리 기초생활 수급자였으면 그나마 조금이라도 국가에서 생계비 보조를 받았을 텐데 그것도 여의치 않았을 것이다. 생활을 책임질 수 있는 성장한 두 딸이 있었는데 두 딸도 직장을 다닐 수 없는 상황에서 어머니 혼자 식당일로 겨우 생계를 유지했을 것이다. 세 모녀를 살릴 수 있는 대책이 없었나? 이 세 모녀는 왜 삶을 놓아버린 것일까? 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수치스럽게 했을까? 정말 살 수 있는 방법이 없었나?

 

나는 만일 기본소득이 있었다면 이런 불행한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난은 개인의 잘못만은 아니다. 개인이 게으르고 무능해서 가난해지는 것이 아니다. 가난을 개인의 잘못으로 돌리는 능력 중심의 무한경쟁 사회가 문제 아닌가? 그런 정책을 양산하는 신자유주의가 문제 아닌가? 이런 생각을 점점 깊이 했다. 가난을 국가 앞에서 직접 증명해야만 겨우 기초생활수급자로 인정되어 최소한의 생계비를 보장받는 수치스러운 구조라면 과연 국가가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인권을 지켜주고 있는가? 짓밟고 있는가?

 

“아빠, 한 달에 20만 원이면 큰돈이에요.”

 

20만 원은 아들에게 한 달 식비라고 말했다. 나는 소태를 씹은 듯 입이 써졌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도 다녀왔지만 아직 실업자 신세인 큰아들이 말했다. 청년 기본소득 이야기다. 독립하겠다고 집을 나간 아들에게 20만 원은 큰돈이었다. 그 돈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큰 차이라고 말했다. 아직 직장을 잡지 못하고 자신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는 중인 백수 아들이 못마땅하기도 했지만, 그 말이 내 가슴에 깊이 박혔다.

 

나는 아들을 너무나 잘 안다. 착한 아들이다. 정직하고 부지런하다. 직장을 갖지 않는 게 아니고 들어갈 직장이 없다. 내가 청년일 때는 당장 목구멍이 포도청이니 아무 일이나 되는대로 일했다. 그래도 그때는 일자리가 있었다. 아들은 아무 일이나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아들은 알바도 하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계속 모색하고 있다. 그럴 때 20만 원은 큰돈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34조에는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사회보장‧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지닌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송파구 세 모녀’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한 사람당 20만 원씩 한 달에 60만 원이 지급되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스스로 삶을 포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코로나19와 자동화 시스템으로 인해 빈부격차와 실업률이 증가하고 있다.

 

“문제는 기본소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