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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나의 본질은 어디에···'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

 

◆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 / 지영 지음 / 광화문글방 / 260쪽 / 1만3000원

 

제9회 수림문학상 당선작으로, 심사위원 전원 추천으로 선정됐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토종 한국인인 당신이 어느 날 갑자기 한국어를 말할 수 없게 된다면 어떨까? 한국어를 잊은 대신 전혀 몰랐던 프랑스어나 독일어 등 다른 나라의 언어를 구사하게 된다면 어떨까?

 

언어적 정체성이 바뀐 나의 본질은 사라지고 허상만 남은 것은 아닐지, 한국어를 말하던 과거의 나는 진짜 본질이었는지 작가는 묻는다. 책은 실존적 질문을 기사와 인터뷰 형식이라는 새롭고 신선한 방식으로 전개해나간 장편 소설이다.

 

테러 현장에서 불의의 사고로 의식을 잃었던 인물 ‘수키 라임즈’가 의식을 되찾은 후, 모국어를 잊고 새로운 언어를 구사하게 되며 겪는 사건을 그렸다. 독특한 설정으로 시작부터 독자의 흥미를 끌어당긴다.

 

미국의 쇼핑몰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현장에서 파키스탄 이민자 소년을 구하려다 총상을 입고 쓰러진 수키. 의로운 희생정신으로 전 세계인에게 감동을 준 수키는 의식을 잃은 채 병원에 입원한다. 50여 일 만에 깨어난 그가 한 첫마디, “Mori···Upper”. 무슨 말일까? 인도계 미국인인 그의 말을 아무도 알아듣지 못했다. 같은 병원에 입원해 있던 한국인에 의해 밝혀진 그의 첫마디는 바로 “머리 아파”였다.

 

영어를 잃고 한국어를 얻은 수키. 이 증상은 ‘수키 증후군’이라는 질병명을 탄생시킨다. 이 병은 전쟁, 내전, 사고 현장 등을 겪거나 크게 다친 사람들에게서 나타났다. 환자 수는 많지 않지만 세계적으로 발현되고, 몸 전체가 먼지로 변해 사라지는 병의 특성 때문에 세계보건기구는 ‘팬데믹’을 선언한다.

 

책의 ‘팬데믹’에서 혼란에 빠진 인물들을 보며 독자는 지금 우리 사회가 겪는 팬데믹을 떠올려 보게 된다. 점점 먼지가 돼 사라지는 몸은 마치 잃어버린 우리의 일상과도 같다.

 

언어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수키의 삶의 터전, 아니 삶이 송두리째 바뀐다. 미국에 살던 수키는 한국에 넘어와 여러 인터뷰와 강연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하지만 그 관심은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시들해지고, 수키의 일거리는 줄어든다.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심지어 인도에서까지 이방인이 된 수키. 언어가 바뀐 그의 본질은 그대로인 걸까. 작가는 우리 스스로 계속 생각해보게 만든다. 기사와 인터뷰의 형식을 빌려 쓴 이 책은 과감한 생략이 많다. 그 사이사이를 독자의 상상력과 생각으로 자연스럽게 메워나간다.

 

심사위원들은 “사고 뒤 전혀 다른 환경에 놓인다는 설정은 낯설지 않지만 그것이 ‘말’이라는 점이 신선했고, 언어와 세계와의 관계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힘이 있었다”며, “모국어를 잃고 전혀 다른 언어를 완벽하게 구사한다는 것은 몸에 다른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몸 자체가 바뀐 것과 같아, 결국 이 세계에서 고립되고, 먼지로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내용은 언어에 대한 놀라운 천착이었다”고 책을 평했다.

 

‘수키 증후군’이 발현된 뒤 먼지처럼 사라지는 것은 어쩌면 몸이 아닌 나의 본질은 아닐까.

 

[ 경기신문 = 정경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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