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와 개혁'을 기치로 내건 17대 국회가 초반부터 구태로 회귀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대화와 타협으로 상생의 정치를 펴겠다던 여야의 초심이 슬그머니 사라지면서 절충을 통한 대안제시 대신 일방통행식 접근방식에 다시 무게가 실리는 듯한 분위기다.
17대 국회 개원식 이후 100일째를 맞은 16일, 여야가 재벌개혁을 다루는 국회 정무위에서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처리를 놓고 밤을 새워가며 대치한 것이 단적인 사례다.
우리당은 "시장의 투명성 확보를 위한 한시적 제도"라며 단독 처리를 시도했고,이에 한나라당은 "기업투자 활성화를 역행하는 경제무시법"이라며 실력저지에 돌입한 것.
이 과정에서 한나라당은 여성인 나경원 이계경 의원을 정무위원장석 주변에 배치시켜 `남성의 접근'을 차단함으로써, 지난 16대 국회 막판에 현 정무위원장인 우리당 김희선 의원이 감행했던 위원장석 `점거시위'를 사실상 재연했다.
또 한나라당 일부 의원은 17일 새벽 여당의 심야 기습처리를 우려, 회의장에 남아 불침번을 서는 광경을 연출, 지난 봄 탄핵정국 당시 여당 의원들의 본회의장 불침번을 연상시켰다. 여야의 뿌리 깊은 불신을 단적으로 드러낸 대목이다.
초선 의원들이 정무위로 무대로 옮긴 정쟁의 전면에 나선 것도 실망감을 더하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여당은 야당을 설득하려는 자세가, 야당은 여당과 타협하려는 자세가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공정거래법과 관련, 우리당은 "지금까지 1년반동안 토론만 했다"며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한나라당은 명확한 당론을 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좀 더 재계의 여론을 수렴하자"며 맞서고 있다.
이같은 대치를 놓고 정치권 일각에선 여당이 과거사 및 개혁입법 처리를 시도할 `11월 대전'을 앞두고 기선 잡기 차원에서 공정거래법을 볼모로 잡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을 제기하고 있다.
어쨌든 공수만 바뀌었을 뿐 16대 국회 때처럼 다수가 힘을 앞세워 강행처리를 시도하고, 이에 소수가 실력저지로 맞서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지 벌써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여기에다 최근 야당 의원이 골프장에서 술에 취한 채 연로한 직원을 폭행해 물의를 빚은 가운데 상임위 등 공개 석상에서 언행을 자제하지 못하는 경우가 갈수록 잦아지고 있어 의원의 자질 시비도 점증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