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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숙의 프랑스 예술기행] ⑨ 보그다노프 형제와 생-라리

 

2022년 1월 10일 15시. 파리 8구 마들렌느 대성당. 프랑스 전 장관 뤽 페리(Luc Ferry), 작가 라파엘 앙토방(Raphaël Enthoven), 방송인 시릴 아누나(Cyril Hanouna) 등 프랑스의 유명인들과 유고슬라비아 엘렌느 공주 부부 등 해외인사, 그리고 익명의 프랑스인 1000여 명이 모였다. 보그다노프(Bogdanoff) 형제의 마지막을 배웅하기 위해서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방송인 보그다노프 이고르(Igor)와 보그다노프 그리슈카(Grichka). 이들은 일란성쌍둥이다. 바늘과 실처럼 항상 붙어 다녔던 그들. 영혼의 반쪽이었을까. 그리슈카가 코로나 19로 세상을 떠나자 이고르도 6일 만에 같은 길을 걸었다.

 

 

데칼코마니를 보는 듯한 그들의 형상. 할리우드 배우 뺨치게 핸섬했었다. 그런 그들이 우주복을 입고 나타나 미래로 시간여행을 하고 천체의 신비와 빅뱅, 외계인 등을 '땅 익스(Temps X)'에서 거침없이 보여주면 시청자들은 홀딱 빠져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 인기는 이 프로를 10년간 장수케 했다. 그 덕에 과학과 공상과학(Science fiction)이라는 딱딱한 주제가 대중과 아주 친밀해졌다. 물론 이고르와 그리슈카는 프랑스 대중문화 보급에도 크게 기여했다. 텔레비전과 라디오에 콤비로 나와 재기 넘치는 입담을 자랑하고 환상의 멜로디를 연주하면 관객은 넋을 잃었다. 영원한 스타는 없다지만 이들만은 영원했다. 하지만 이고르와 그리슈카는 엉뚱하고 독특했다. 나이가 들면서 ET처럼 보톡스를 맞고, 이상한 질문들을 하고, 불멸의 외계인을 꿈꾸었다.

 

 

하지만 인간 그 누구도 자연법칙을 거역할 수 없는 법. 이들은 죽었고 고향에 가서 영원히 잠들 것이다. 이 대스타 쌍둥이가 유독 사랑한 곳은 고향이다. 프랑스 남서부 제르(Gers) 주 생-라리(Saint Lary). 그들은 여기서 1949년 태어났다. 피레네 산맥 한가운데 자리한 생-라리. 그 자연경치는 참으로 빼어나다. 수려한 산세와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 하얀 눈 위에 펼쳐진 알파인 스키장, 그곳에서 바라보는 일출, 굽이굽이 흐르는 계곡의 물들, 잘 단장된 하이킹 코스와 승마장. 일상의 지친 몸을 끌고 가 온천욕을 하며 휴식을 취하기엔 최상이다.

 

이뿐 만이 아니다. 여기엔 조상들이 남긴 문화재도 많다. 아름다운 중세의 요새와 수도원, 그리고 성들이 있다. 그 성들 중 하나를 보그다노프 형제의 할머니가 소유하고 있었다. 그녀는 원래 오스트리아 왕족 출신으로 1925년 가스코뉴(Gascogne) 지방으로 이사 왔다. 그 할머니의 성에서 이고르와 그리슈카는 어린 시절을 보내며 밭갈이를 하고 소몰이를 했다.

 

이런 추억을 잊지 못했던 걸까. 최첨단 과학을 노래하고 전도했던 그들이지만 성에서 생활하는 것을 동경했다. 따라서 1986년 이 형제는 생-라리 몽포르(Monfort)에 있는 에스클리냑(Esclignac) 성을 28만 유로(한화 3억 8000만 원)에 사들였다. 1032년 건축된 낡은 성에서 이들은 아날로그 방식으로 매년 8월 15일 가족과 지인들을 초대해 연회와 잔치를 벌였다.

 

보그다노프 형제의 이러한 생-라리 생활은 뒤돌아보지 않고 디지털로 내달리는 우리에게 생각의 시간을 갖게 한다. 자연과 인간의 정서. 그 시간여행을 위해 생-라리로 훌쩍 떠나보라. 거기서 소중한 많은 것을 분명 되찾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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