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생활에세이] 3월의 행복론

 

 

에세이는 자유로운 문학이지만 자기 색깔이 분명해야 한다. 비록 평범한 내용이라 하더라도 진실이 탑재되어야 힘을 얻는다. 수필적 사유의 깊이는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의 심도와 깊은 상관성을 갖는다. 동시에 독자에 대한 설득력으로 이어진다. 허풍 떨지 말고 겸허하게 수신에 힘써야 한다. 그런데 내가 성장해 오는 동안 학교 졸업식에서나 대학 학위수여식 때의 총장 축사에서 보면 거창한 말들이 많았다. ‘큰 꿈을 가져라’ 고 하거나 일류대학, 일류 사회, 선진국으로의 진입, 부강한 한국 등, 그것은 결국 경쟁으로 이어지고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을 상징하게 되었다. 따라서 학교에서나 기업에서나 연구기관에서나 수석이 되어야 하고 등수 안에 들어야 대접을 받았다. 그런 사람만이 행복한 것 같았다, 다수의 행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우리는 행복을 제대로 배울 기회도 없었고 배우지도 못했다. 행복에 대해서 선생님이나 부모로부터 배운 게 없다. 돈 때문에 한숨짓고 다투며 손발이 갈라진 부모의 모습을 보면서 돈이 있으면 좀 더 편하고 행복하겠구나. 하고 ‘돈 = 행복’을 막연하게 동경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학생은 공부 못하면 불행하고 어른은 가난하면 행복하지 못한 것으로 알았다.

 

나는 학창 시절 평범한 학생이었다. 사회에 나와서도 반듯한 공무원이 되었거나 일류 회사에 다니지 못했다. 오로지 내 능력에 맞고 나를 인정해주는 직업과 일터를 찾아서 소신껏 근면하게 살아왔다. 문학의 힘을 빌려 나 자신의 길을 찾았고 그 길에서 마음의 평안을 누리고자 하였다. 자신감이 부족해도 자존감을 생각하며, 최소한 돈벌레는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철학 이전에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하며 수신제가를 생각했다. 고전을 읽고 시를 외우면서 수필을 썼다. 그 과정에서 문인 재사(文人才士)가 한번 소유한 것은 조물주라도 어떻게 할 수 없다. 것을 조선시대 이용휴의 『나를 찾아가는 길』에서 만났다.

 

그 무렵이었다. 신석정 시인의 '들길에 서서'라는 시를 만난 것도.

 

푸른 산이 흰 구름을 지니고 살 듯/ 내 머리 위에는 항상 푸른 하늘이 있다// … 두 다리 비록 연약하지만 젊은 산맥으로 삼고/ 부절히 움직이는 둥근 지구를 밟았거니 … // 뼈에 저리도록 ‘생활’은 슬퍼도 좋다/ 저문 들길에 서서 푸른 별은 바라보자 … —

 

나는 이 시를 읽고 가장 겸손한 영혼의 눈물을 흘렸다. 뼈에 저리도록 생활이 슬플 때마다 하늘을 보고 이 시를 외우며 자가발전을 감행하였다.

 

그동안 코로나로 황폐해진 사회현상과 선거 때, 같은 편 가르기에서 마침표를 찍고 모두 하나가 된 한국인으로서 ‘국민들의 행복’을 위한 지도자로서의 의무를 깨달았으면 싶다. 해방이 되자 김구 선생은 제일 먼저 우리나라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문화력’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미국처럼 헌법에다 ‘국민들의 행복 추구권’을 명문화해서라도 국민들의 행복 문제를 경제와 부동산 투기보다 앞서 고민해주는 국가적 지도자를 나는 기다리고 있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