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6 (화)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기고] 판결보다 나은 조정

 

재판정은 억울한 사람으로 가득하다. 원고도 피고도, 피해자도 피고인도 모두 억울하다고 말한다. 억울함은 내가 예상치 못한 불이익한 대우를 받았을 때 쓰는 말이고, 다분히 주관적인 정서이기 때문에 느끼는 사람마다 제각각이다(졸저 ‘우리는 왜 억울한가’ 중에서). 세상이 온통 내 맘 같지 않아서 인간관계가 어렵고, 거래나 계약도 입장에 따라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분쟁이 생길 수밖에 없다. 본의 아니게 얽히고설킨 분쟁이 지긋지긋하다면서 민·형사로 흩어진 분쟁을 제발 좀 한방에 끝낼 방법이 없냐고 묻는 사람이 많지만, 그게 그렇게 쉽지가 않다.

 

소송은 본질적으로 양 당사자가 신사적으로 싸울 방법을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마련해주고 판사가 심판을 보는 구조이다. 다만 형사소송에서는 원고 자리에 국가를 대리하는 검사가 앉는다. 심판인 판사가 다소 약해 보이는 사람이 있다고 그 편을 들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고, 분쟁의 대상만을 판단할 권한이 있을 뿐 다른 사정이나 주변 사람을 끌어들여 사건을 해결할 수도 없다. 판결은 당사자 사이에 과거에 벌어진 수많은 일 중 개별 쟁점에 대한 판단일 뿐이다.

 

예를 들면, A가 B에게 1천만 원을 빌려줬고, A는 그 채권을 자신의 채권자인 C에게 넘겼는데, B가 C에게 돈 갚기를 거부하자 A가 B를 찾아가 따지다가 주먹으로 때린 사건이 있다. 언뜻 생각해도 대여금, 양수금, 폭행, 손해배상 등 셋 사이에 얽힌 민·형사 사건이 여럿이다. 속 시원하게 한꺼번에 해결할 방법이 있으면 좋겠지만 일반적인 소송이나 판결로는 불가능하다.

 

당사자들끼리 자발적으로 합의하면 최선이지만, 애초에 그것이 가능했다면 여기 이르지도 않았을 것이다. 민·형사로 나뉜 이런 분쟁을 그나마 가장 온화하고 경제적으로 해결할 방법으로 법원의 조정(調停)제도를 추천한다. C가 B에게 1천만 원을 청구하는 사건을 조정으로 전환하면 이해관계인 A를 참가시킬 수도 있다. 판사나 조정위원이 우선 A와 B를 설득해 폭행에 대한 손해배상으로 3백만 원 정도에 합의하게 하는 경우, ‘B는 C에게 7백만 원을 지급한다. A는 C에게 3백만 원을 지급한다. B는 A에 대한 고소를 취소한다.’는 간명한 조정안이 도출될 수 있다. 서로 응하기만 하면 최소 서너 개의 소송이 대법원까지 가서 각기 판결로 확정된 것과 동일한 효력을 갖게 된다. 대단히 경제적이고 원만한 해결책이다.

 

조정이 성립되기 위해 넘어야 할 단 하나의 조건이자 가장 어려운 장벽은 당사자 모두가 동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 사건 같은 경우도 객관적으로는 저 정도의 해결책이 가장 합리적인데, 가끔 감정이 개입되면 돈이 문제가 아니라고 하면서 비용이 얼마가 들더라도 끝까지 판결로 가겠다고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경우에 인내심을 가지고 당사자를 설득하는 것이 조정담당 판사나 조정위원들의 역할이다.

 

법원에 선임된 조정위원들은 해당 분야의 전문가이자 지역사회에서 존경받는 분들로 구성되어 있다. 대단히 창의적인 발상을 제시하기도 하고, 판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당사자를 훈계하고 감정에 호소하거나 다소 약자의 편을 들어주는 분도 있다. 단지 이성적인 판단만을 요구하는 소송보다 일반인의 눈높이에 맞는 결론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남양주지원 조정실에서 뜻밖에 연예인이나 예술가 같은 유명한 조정위원을 만나 좋아하는 당사자들도 보았다.

 

조정실은 법정보다 훨씬 인간적이다. 법정에서는 긴장된 분위기에서 꼭 해야 할 말만을 하게 되지만 조정실에서는 좀 더 가까이 다가앉아 자초지종을 말할 기회가 생긴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그것을 들어주면서 인간적인 유대감이 형성된다. 서로간에 신뢰가 생기면 당사자들이 자존심을 내려놓고 조정안에 못 이기는 듯 수긍하면서 상호 이익이 되는 성공적인 조정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건에 따라서는 조정보다 오히려 판결로 명쾌한 결론을 내리는 것이 나은 경우가 있지만, 대부분의 사건에서 당사자가 다소라도 양보할 의사가 있다면 훨씬 신속하고 인간적이고 경제적인 해결책으로 조정을 추천하고 싶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