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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문화 원천은 한반도 도래문화"

이노우에 미쓰오 교수, 경기대 초청 특강

경주가 천년 수도라고 하지만, 일본 교토(京都)는 이를 능가하는 장구한 도읍지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일본 왕실이 이곳에 도읍한 것은 서기 794년, 간무(桓武) 천황 재위 13년이었다. 이때 신라는 원성왕(元聖王) 10년이었고, 중국은 당 덕종(德宗) 10년이었다.
간무는 교토에 헤이안쿄(平安京)를 세웠으며, 이후 일본 역대 천황은 이곳에 살다가 1868년 메이지(明治) 왕정복고가 단행되고 막부에 빼앗겼던 왕권을 회복하면서 도읍을 에도(江戶.도쿄)로 옮기기까지 약 1100년이나 황궁(皇宮)이 있었다.
교토시립 역사자료관장이기도 한 교토 산교(産業)대 이노우에 미쓰오(井上滿郞.64) 교수는 교토가 고대 이후 지금까지 일본 문화의 중심지로 군림할 수 있었던 가장 주요한 요인으로 한반도 도래인(渡來人)과 도래문화(渡來文化)를 지목했다.
이노우에 교수는 경기대 국어국문학과와 월간 「문예사조」 초청으로 12일 오후 서울 충정로 경기대 서울캠퍼스 사회교육원에서 행한 특강에서 "교토문화를 이룩한 주체는 한반도에서 건너온 사람들과 그들의 선진문화였다"고 강조했다.
경기대 초빙교수이기도 한 일본 고대문학 연구자 홍윤기(洪潤基) 박사가 통역한 이날 강연 '교토의 역사문화와 한반도'에서 이노우에 교수는 "헤이안쿄가 돌연 출현한 것이 아니다"고 전제한 뒤, 그 배경으로 간무가 이곳으로 천도하기 이전에 교토에는 "도래인과 도래문화가 ▲한반도에서 ▲집단으로 ▲선진문화를 지니고 온" 문화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로 이노우에 교수는 이날 강연에서 일본 각종 고문헌에 하타씨(秦氏)로 기록된 한반도 도래인 씨족집단의 역할을 집중 부각시켰다.
그에 의하면, 한반도에 도래한 하타씨족은 지금의 교토 서쪽을 관통하는 가도노가와(葛野川)라는 곳에 가도노오이(葛野大堰)라는 대규모 제방을 축조해 관개(灌漑)와 용수(用水)를 일으킴으로써 농업혁명을 불러왔다.
하타씨는 씨족 사찰로서 고류지(廣隆寺)를 세우고, 또 씨족 신사(神社)로는 처음에는 농업신이었다가 나중에는 상업의 신으로 주로 신봉되는 이나리신사(滔荷神社)와 산신(山神) 신앙 중심인 마쓰오신사(松尾神社)도 건립했다.
고대 한반도와 교토의 밀접한 교류관계로서 이노우에 교수는 하타씨 일원인 진하승(秦河勝)이 창건한 고류지 소장 일본 국보 목조 불상인 미륵보살상이 한국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국보 제83호 금동반가사유상과 매우 흡사함을 지적했다.
그는 "고류지 불상은 적송(赤松)이 재료인데, 나라(飛鳥)시대 일본에는 적송을 불상으로 만드는 풍습이 없었으므로, 이 불상은 한반도 도래인의 작품임이 확실하다"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이나리신사는 현재 전국에 걸쳐 약 11만개가 있다고 추산되는 일본 전체 신사 중 약 4분의 1이나 되는 3만개를 점유하고 있다"면서 "이것만 보아도 한반도 도래문화가 일본문화에 미친 영향력을 잘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일본의 강신제(降神祭)에 등장하는 노래 가사에 신라어인 '아지메'(阿知女)가 포함돼 있다는 통역자 홍윤기 교수의 학설을 소개하면서 "나는 이런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결국 한반도 도래인과 도래문화가 일본 고유 문화와 결합해 오늘의 일본 문화를 이룩하는 원천이 되었으며, 특히 그러한 두 지역 문화의 교차점이 교토였다는 결론을 이노우에 교수는 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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