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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갑의 難讀日記(난독일기)] 물을 필요가 없었다

 

 

 

도망치는 것들은 직선으로 달리지 않는다. 토끼는 지그재그로 달리고 사슴은 펄쩍 뛰어 오른다. 맹수의 추적을 따돌리는 방법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임을 본능으로 안다. 사람 역시 다르지 않다. 몸을 숨기려는 사람은 목적지까지 단숨에 가지 않는다. 버스나 전철을 이용할 때도 미행하는 자가 있는지 먼저 확인한다. 버스나 전철이 도착해도 바로 타지 않고 기다렸다가 문이 닫히기 직전에 올라탄다. 내릴 때는 목적지로부터 두 정거장 전에 내리는데, 역시나 문이 닫히기 직전에 내린다. 최종 목적지로 향할 때도 곧장 가지 않는다. 큰길을 피하고 구불구불한 골목길만 골라서 걷는데, 뒤따르는 그림자가 없는지 모서리를 꺾을 때마다 확인한다.

 

사내 역시 그랬다. 삼십여 년 전, 사내는 시국사건 수배자로 청춘의 한 토막을 보냈다. 그 시절, 사내에게는 지켜야 할 수칙이 있었다. 함께 수배된 청춘들과 약속한 원칙이었다. 원칙 가운데 가장 우선시 되는 것은 은신처를 지켜내는 것이었다. 은신처는 수배된 청춘 모두의 것이어서, 그곳이 털리면 모두의 안전도 털릴 수밖에 없었다. 털리지 않기 위해서, 사내와 또 다른 청춘들은 멀리 걷고 많이 걷고 오래 걸었다. 명절이나 기념일이 되어도 집에 가지 않았다. 집이나 가족은 덫을 놓고 잠복하는 가장 손쉬운 길목이었다. 그런 날이면, 사내의 어미는 대문 앞을 서성이는 형사들을 불러들여 밥상을 차렸다.

 

사내가 형사들에게 체포된 곳도 식당이었다. 사내는 홀이 아니라 화장실 통로 옆의 작은 방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형사들은 방문을 열고 한 쪽 발을 방안에 내디딘 체 말했다. 그만 가자. 뒤를 둘러보았지만 어디에도 사내가 도망칠 창문은 없었다. 수갑을 채운 형사들은 사내의 허리춤을 양쪽에서 틀어잡고 연행했다. 잡혀가는 내내, 은신처는 털리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사내는 생각했다. 삼십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사내는 걷는 것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달라진 게 있다면, 수배자가 아니라 여행자 신분으로 길을 걷는 것이다. 은퇴한 사내는 번듯한 관광지 대신 한적한 시골마을로의 여행을 즐긴다. 당연히 도보여행이다.

 

바닷가 인근의 시골마을을 지날 때였다. 길에서 마주친 여행자를 선뜻 집으로 초대한 부부가 있었다. 그들 또한 은퇴한 사람들이었다. 요양병원에 입원한 아버지를 대신해서, 시골집을 관리하려고 자주 내려온다고 하였다. 그들이 사는 곳도 서울이었다. 부부는 사내에게 시원한 차를 대접했다. 보기 드문 우연과 호의에 사내는 직접 쓴 책을 부부에게 선물했다. 사내가 살아온 이력이 고스란히 담긴 수필집이었다. 며칠 지나 부부에게서 사내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다시 한 번 집으로 초대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다시 찾은 부부의 시골집에는 술상이 차려져 있었다. 준비한 안주는 부부가 직접 바다에서 낚은 횟감이었다.

 

술잔에 소주를 채운 뒤에도 부부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남편이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나도 서성이곤 했습니다. 명절날 누군가의 시골집 대문 앞에서. 묻지도 않는 대답을 왜 하는지, 사내는 물을 필요가 없었다. 마실수록 술이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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