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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규 칼럼] 표절 사회의 풍경

 

1.

말복이 지났다. 폭우와 염천(炎天)이 교대로 세상을 때리고 있다. 이 와중에 김건희 씨 논문 표절 문제가 사람들의 분노지수를 치솟게 만들고 있다. 지난 8월 1일 국민대가 발표를 했다. 그녀의 2007년 학위 논문을 포함한 모두 4편의 논문에 대하여 표절이 아니거나 검증불가라고. 수여된 박사학위에도 문제가 없다는 판정이다.

 

과연 그런가?

 

2018년 7월 17일 대한민국 교육부는 훈령을 공표했다.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이란 제목이다. 이 훈령의 제 3장 제 12조는 표절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정의를 내린다. “일반적 지식이 아닌 타인의 독창적인 아이디어 또는 창작물을 적절한 출처표시 없이 활용함으로써, 제3자에게 자신의 창작물인 것처럼 인식하게 하는 행위”.

 

국민대는 박사학위 논문심사 청구 자격으로, 전문학술지 및 학술대회 발표 논문 3편의 사전 게재를 요구한다. 김건희 씨가 이 같은 요건 구비를 위해 발표한 3편의 논문 모두가 심각한 표절의혹을 받고 있다. 예를 들어 한글 '유지'를 엉터리 영어인 'Yuji'라고 번역해서 제목으로 올린 논문을 보자. 본문의 5단락, 각주 3개가 특정 신문 기사와 토씨까지 동일하다. 그런데도 일체의 인용 및 출처표기가 없다. 이 논문을 대상으로 표절 검사 프로그램을 돌려보니 표절률이 무려 43퍼센트로 나왔다.

 

2.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박사 학위 논문도 이에 모자라지 않다. 언론 기사를 거의 그대로 베껴 적거나, 다른 사람 블로그에 있는 문장을 인용표기 없이 옮겨 적은 것이 한두 건이 아니다. 해당 학위논문의 직접적 표절 피해자인 구연상 숙명여대 교수는 방송에 나와서 이렇게 지적했다.

 

문제의 박사학위 논문의 2장 1절을 보면 3~4쪽 정도가 100% 똑같다는 것이다. 토씨 하나 다르지 않게 베껴 썼고, 심지어 구 교수 논문에서는 본문에 기술한 문장을 각주로 가져가서 자기가 쓴 것처럼 위장했다. 이처럼 논문 작성에 있어 출처를 숨기면 정신적 도둑질이라는 것이다.

 

이 어이없는 사태를 묵과할 수 없어 13개 교수연구자 단체가 뜻을 모았다. 8월 5일 기자회견을 열고 공동성명을 통해 논문표절을 통렬히 규탄한 것이다.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사교련), 전국국공립대학교수회연합회(국교련), 한국사립대학교수노동조합, 한국비정규직교수노동조합, 민주평등사회를위한전국교수연구자협의회(민교협 2.0), 전국교수노동조합, 사회대개혁지식네트워크... 등이다. 이들 단체의 회원 범위에는 대한민국 거의 모든 교수연구자들이 다 포함되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상 유례없는 이러한 성명 참여 규모는 그만큼 교수연구자들의 모욕감이 깊다는 증거다.

 

 

3.

13개 교수연구자 단체가 발표한 공동성명 제목은 “대학의 불이 꺼지면 나라의 불이 꺼진다”이다. 대학이야말로 공동체의 상식과 윤리 타락을 막아내는 마지막 보루이기 때문이다. 학문공동체 존립의 기초가 되는 학위 수여에 있어 정당성이 부정된다면 대학은 더 이상 대학일 수가 없는 것이다.

 

현재 공동성명에 참여했던 단체를 중심으로 전공과 계열을 뛰어넘은 <범 학계 국민검증단>이 구성, 가동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최대한 신속한 조사를 마친 후 <표절 논문 및 은폐 실상에 대한 대국민 보고회> 개최를 예고했다.

 

우리가 이 지점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논문 표절의 팩트만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표절 내용이 만천하에 공개되었음에도, 해당 문제가 어두운 구덩이에 파묻히는 현실에 대한 조명이다.

 

국민대와 숙명여대는 백일하에 드러난 논문 표절에 대하여 심각한 무리수를 두고 있다. 특히 국민대는 세상을 뒤흔든 이 같은 발표를 감행하고도 표절 관련 재조사위원회 구성과 논의 과정, 회의 자료, 최종 보고서 등의 공개를 한사코 거부하고 있다. (만약에 존재한다면) 외부 압력을 포함한 진상 묵살 정황에 대한 진실이 반드시 밝혀질 필요가 있다. 그러한 총체적 시스템에 대한 규명 없이 이번 사태는 결코 마무리되지 않을 것이다.

 

 

4.

다시 구연상 교수 이야기로 돌아가자.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이렇게 토로한다. “나는 2022년 8월 1일 전까지 한국 학계의 논문 검증 시스템을 믿었고, 명백한 표절 논문이 ‘표절 아님’으로 판정되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국민대의 ‘틀린 결론’ 앞에서 내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9월 1일부터 마주하게 될 나의 수강생들의 얼굴이었다.” 그리고 김건희 씨의 진정한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그녀 스스로가 (국민대에) 학위취소 요청을 하라고 촉구한다.

 

누가 이를 과하다고 비난하겠는가. 지금까지 밝혀진 내용만으로도, 그녀에게 수여된 숙명여대와 국민대 학위 논문은 취소되어야 함이 마땅하기 때문이다.

 

교수연구자들의 분노가 땅을 울리고 있다. 이런 분노에 말굽쇠가 울리듯 공명하지 않는 사회는 죽은 사회다. 원칙과 지조가 증발한 공동체다. 이것이 김건희 씨 논문 표절 논란을 지켜보는 교수연구자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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