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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에서] 기억에 남는 선생님

 

친구는 11년 전 첫 발령 때 만났던 학생 A를 종종 본다고 했다. A가 고등학교 때까지는 연락만 주고받았는데 대학에 입학하고서는 만나서 밥도 먹고 사진도 찍는 것처럼 보였다. 얼마 전 둘이 찍었다는 사진을 보니 누가 선생님이고 학생인지 모를 정도로 비슷해 보이는 성인 여자 두 명이 서 있었다. 조그마했던 초등학생이 어느새 자라서 친구보다 키도 컸다. 둘 사이에 별일이 없으면 평생 만나는 사이가 될 것 같았다. 제자와 계속 만남을 갖는 친구가 부럽기도 하고, 나의 선생님들은 어떻게 지내시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기회가 닿는다면 만나고 싶은 선생님이 몇 분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다. 40대 여자 선생님이셨는데 체벌이 미덕처럼 난무하던 시기에 우리를 사랑해주시는 게 피부로 느껴질 정도였다. 수업도 재밌어서 늘 즐겁게 공부했다. 하루에 한두 번 정도는 수업 시작 전에 가벼운 놀이로 환기하고 수업을 시작했고, 당시에 도입됐던 열린 교육 조별 활동을 신나게 했던 느낌적인 느낌이 있다. 수업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고 놀이했던 것만 기억나는 걸 보면 호모 루덴스가 맞는 듯하다. 놀이 덕분에 교실이라는 공간이 편안해져서 새로운 걸 배우는 수업시간이 부담스럽지 않았다.

 

또, 지금이야 교실에서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는 교육방식이 흔해졌지만, 당시만 해도 40명 넘는 아이들이 생활하는 공간에서 한 명 한 명의 마음을 궁금해하는 선생님은 희귀종이었다. 초, 중, 고 12년을 지나고 보니 친절한 선생님들은 종종 있었는데 학생들과 마음으로 대화를 시도한 선생님은 드물었다. 그 어려운 걸 담임 선생님께서 해주셨다. 쉬는 시간마다 아이를 붙들고 대화를 나누셨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아이들은 눈치가 빨라서 이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지 사랑하지 않는지 금방 알아차린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준 원 앤 온리 선생님이셨다.

 

다른 선생님은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셨던 당시 60대 초반의 남자 선생님이다. 10대 여고생과 60대 남자 교사면 거의 손녀와 할아버지 같은 느낌이라 아이들이 거리감을 느낄 법도 했는데 이분은 만화에 나올 것 같은 범상치 않은 선생님이었다.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10대 여자아이들을 사로잡는 개그와 온화함을 갖추고 있어서 두루두루 인기가 좋았다. 당시에 법과 사회 과목을 가르치셔서 반 아이들이 선택과목을 법과 사회로 선택하기도 했다.

 

기억에 남는 일은 상담 때 할아버지 담임 선생님과 대화가 너무 잘 통해서 아이들이 상담 후에 교실로 돌아와 놀랐던 기억이 있다. 돌이켜보면 대화를 했다기보다 선생님이 우리 말을 잘 들어주시고 맞장구를 쳐준 게 아닌가 싶다. 어차피 공부로 받는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했던 상황이니까 걱정되는 부분을 말하지 않고 그냥 손녀 보듯이 오냐오냐해주신 듯하다. 이렇게 대화가 잘 통하는 남자 선생님은 그전에도 그 이후에도 만나보지 못했다. 우리를 진솔하고 스스럼없이 대해주시는 것만으로도 팍팍한 고등학교 생활이 좀 나아졌다.

 

이렇게 적고 보니 내가 교실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 고민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기. 교실에서 했던 공부 내용보다 선생님과 나눴던 대화, 눈빛 같은 게 더 기억에 남는 걸 보면 뭐가 더 중요한지 명확해진다. 이분들처럼 노력해서 아이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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