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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선일의 오지랖]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너무 오래되어 기억조차 가물가물 한 일이다. 나는 그 때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았고 지금처럼 글쟁이가 될 수 있었다. 나는 서울의 작은 시민단체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지나간 일이지만 그때처럼 열정적으로 일을 한 적이 없었다. 그 때는 젊기도 했거니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자부심과 신념이 있었다.

 

시민단체는 시민의 자발적인 후원에 의해 운영된다. 그러다보니 낮은 임금과 처우는 당연한 노동의 조건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반복되는 클라이언트의 민원은 천천히 지쳐가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했다. 시민단체의 활동 목적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불합리한 현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시민들의 호응과 참여를 독려함으로써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한다는 점일 것이다. 나 역시 이를 충분 이해하고 있었기에 제도 개선을 위한 방법으로 못 다한 공부를 하기로 결정했다. 선술했듯이, 대부분의 시민단체는 노동조건이 열악하며 재정 또한 매우 빈약하기 때문에 나 역시 모아둔 돈이 없었다. 그렇다! 난 등록금이 없었다. 공부는 하고 싶지만 등록금이 없는 현실은 나 자신에 대한 실망으로 이어졌고 방 안에 들어 앉아 고민만 깊어가고 있었다.

 

며칠 후, 나는 가고 싶은 대학원에 입학원서를 제출했고 운이 좋았는지 덜컥 합격하고 말았다.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등록 마감일은 하루 이틀씩 다가오는데 여전히 돈이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잘 알고 지내던 지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역시 가난한 사람이었기에 돈을 빌리려 하기보다는 소주라도 한 잔 마시면서 푸념이라고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안주도 없는 깡소주를 먹던 술자리 말미에 그가 내게 말했다. “딱! 생각나는 사람 5명에게만 연락해서 부탁해 보면 어떨까?”

 

동굴 같았던 내 방으로 돌아와서는 머리에 떠오르는 다섯 명의 이름을 적었다. 민망하고 부끄러워 전화를 할까 말까 한참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나 등록 마감일은 당장 내일이었다. 첫 번째 지인, 본인도 어려움, 두 번째 지인, 역시 어려움, 세 번째 지인, 본인도 돈이 필요함. 내 심정은 땅을 파고 들어가고 있었다. 내 주변의 사람들이 이렇게 가난한 사람만 있다는 사실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더 이상의 전화를 포기하려다가 전화를 했던 네 번째 그 사람은 가난한 대학원생이었다. 사진을 전공하고 있던 그 사람은 조건 없이 돈을 빌려주었었다.

 

참담하고 미안하게도, 지금의 나는 그 사람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돈은 갚았지만 지나간 오랜 시간과 내 무심함이 관계를 소원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창신동 언덕의 시민단체를 기억하는지 모르겠지만, 고맙고 또 고마웠던 분, ‘나도 나누고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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