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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수의 월드뮤직 세계사] ‘발칸의 피묻은 넥타이 1’

 

크로아티아를 가면 시내 곳곳 붉은 글씨로 ‘KRAVATA’라고 쓰인 간판을 만날 수 있다. 크로아티아의 수제 넥타이 판매점이다. 프랑스에서는 이 단어를 넥타이로 쓴다. 기원을 알면 재미있다.


17세기, 기독교 신·구교간 ‘30년 전쟁’(1618-1648)은 프랑스, 스페인, 덴마크, 스웨덴 등 대부분 유럽 국가가 참여한 국제전이었다. 프랑스 우방이었던 크로아티아는 파리로 파병을 한다. 파리 시민들은 크로아티아 병사들의 목에 맨 붉은 스카프를 보게 된다. 국왕 루이 14세도 스카프에 관심을 갖고 한 병사에게 정체를 물었다. 국왕의 질문을 제대로 못 알아들은 병사는 얼결에 ‘크라바트’라고 답한다. 크라바트는 ‘크로아티아의 군인’이라는 말이다. 병사는 답을 이렇게 했어야 했다.
‘우리 크로아티아에서는 남편과 아들이 전쟁에 나갈 때 목에 붉은 스카프를 매어주는 전통이 있습니다. 마귀를 쫓는다고 생각해 부적처럼 쓰이고 있습니다. 무사귀환을 바라는 염원을 담은 것입니다.’


루이 14세의 눈에 그 붉은 스카프가 멋있게 보인 듯하다. 루이 14세는 ‘크라바트’를 만들라는 지시를 내렸고 이후 파리에서 유행하게 되는데 모두 이를 ‘크라바트’라 불렀다. 크라바트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패션 디자이너 ‘가브리엘 샤넬’이 패션 소재로 쓰면서 크게 유행하게 됐는데 프랑스 혁명과 함께 수그러든다. 그러다 19세기 초, 영국 패션 디자이너 ‘보우 브러멜’의 ‘보우 타이(bow–tie)’ 일명, 나비넥타이가 인기를 끌면서 ‘넥타이’라는 이름으로 전 유럽에 퍼지게 된다.


(이야기 나온 김에) 크라바트의 변주로 나온 오늘날의 길게 매는 넥타이를 ‘포 인 핸드(four-in-hand)로 부르는 설도 재미있다. 포 인 핸드는 ’네 마리 말이 마차 한 대를 끈다‘는 의미에서 나왔는데, 목에 Y자로 맨 넥타이가 ’마부가 말을 몰 때 쓴 Y자형 고삐와 닮은 데서 나왔다는 이야기다.


크로아티아의 넥타이 상점 ‘KRAVATA’의 간판 앞에서 재미난 역사를 떠올리면서 동시에 발칸반도 스타 ‘고란 브레고비치’를 떠올린 기억이 난다. 그레고비치를 알게 된 것은 그가 영화 음악을 담당한 고전 명작, ‘집시의 시간’(1989)을 보면서였다. 발칸반도를 무대로 한 집시들의 삶을 그린 영화로 1989년, 제42회 칸 영화제 감독상을 받았다. 이 영화 속에 나온 ‘Ederlezi’를 얼마나 반복해 들었던지! 집시의 광기와 한이 내 몸에 불을 붙였다. 브레고비치는 보스니아 출생인데, 아버지는 크로아티아인, 어머니는 세르비아인이다. 아버지 영향을 많이 받고 자랐다는 브레고비치. 그런데 궁금증이 인다. 왜 브레고비치는 아버지의 나라, 크로아티아의 상징인 넥타이를 절대 매지 않는 것일까? 공연에서도 수많은 홍보사진에서도 넥타이 맨 브레고비치를 본 적이 없다. 넥타이 매지 않는 그의 패션에서 혹, 발칸의 피 묻은 역사를 읽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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