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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의 창] 국정원 대공수사권 되돌리기와 CIA

 

연초부터 국가정보원이 2024년 1월 경찰에 이관하기로 한 대공수사권 복원 문제를 놓고 열띤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공방이라기보다 ‘경찰 이관반대론’이 대세다. 대공수사역량을 키우는데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다, 그 공백을 경찰이 단시간에 메우기 어렵다는 우려가 짙게 깔려 있다. 권력의 안배와 견제라는 민주주의의 기본적 전제와도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도 또 다른 반대논거이다. 검찰의 수사권도 상당 부분 이양 받은 경찰이 대공수사권 마저 가져가는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면 ‘수사력 독점’에 따른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고, 이는 고스란히 국가적 위협으로 떠오를 것이다. 2023년 벽두를 장식한 제주·창원·전주 지역 일부 진보단체들과 민주노총 일부 간부들의 이적행위의혹은 대공수사권을 결코 한가롭게 다뤄서는 안 됨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후 ‘안보 = 생존’과 직결되고 있음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혹자는 이를 국가안보주의 확산이라고 칭하지만, 핀란드와 스웨덴이 국가 생존 위협을 느끼고 나토 가입까지 추진하는 마당에 북한의 노골적인 위협을 마주하고 있는 우리가 스스로 무장해제하는 것은 도저히 수용할 수 없다. 아직도 사회 일각에서는 국정원에 대한 마녀사냥 습성이 여전하다. 과거 일부 권한을 오용한 행태와 수사과정에서 발생한 적법 절차 미준수를 부풀려 자유민주체제 수호기관을 허물어왔다. 문재인 정부는 국정원 허물기를 개혁으로 포장하고, 국정원만 사라지면 대한민국이 인권국가가 되고, 사상의 자유를 천국처럼 누리는 국가가 될 것처럼 오도했다. 여기에 국정원을 시기한 사람들까지 가세하여 국가수호기관이 아닌 ‘국가위해 기관’으로 전락시켜 요원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다. ‘안보기관의 무기화’이자 ‘안보기관의 정치화’이다. 불필요한 spinning(여론비틀기)와 cherry-picking(정치적으로 필요한 열매만 따먹기)이 난무하여 국민들의 정상적인 판단을 방해했다.

 

이쯤에서 CIA의 오욕의 역사를 잠시 반추해보자. 70-80년대 남미 등에 대한 공작 실패와 이란 콘트라 사건과 같은 권한남용 등으로 인해 국가위신을 실추시킨 반대급부로 의회의 통제는 더욱 강화되고, 정보활동을 규제하는 법이 새롭게 만들어지거나 보강되었다. 미국민에 영향을 주는 통신첩보 수집을 제한하는 해외정보감시법(the Foreign Intelligence Act)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런 제약조치들은 초당파적인 입장에서 취해졌다. 아이다호 출신 상원의원이던 프랭크 처치(Frank Church)는 초당파적으로 처치위원회를 만들어 정보기관의 불법적인 활동을 속옷 벗기듯 들추어내어 개선책을 마련했다. 중요한 것은 초당파적으로 추진하고, 애국을 기준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물론 최근 미국의 양극화 정치로 인해 안보문제에 관한 초당파적 전통이 무너지고 있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이제 우리도 안보문제에 관한 한 초당파적으로 가자. 북한 무인기 서울 침공에 허둥댔던 군과 정부를 향해 야당은 ‘안보대참사’라는 보수권이 즐겨 사용하던 단어를 구사하지 않았나. 이것만으로도 접점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의 시그널이다. 대공수사권 경찰 이관을 절대 양보할 수 없다면, 이관 시기라도 3년 연장하자. 그리고 난 다음 경찰의 대공수사역량 구비태세를 평가한 뒤 완전한 이관여부를 결정하도록 제언한다. 근래 논의되고 있는 가칭 ‘대공수사 지원단’ 구성이나 ‘대공수사협의체’를 통한 양 기관의 제도적·업무적 협의가 1년 만에 정상 궤도를 잡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시기연장의 필요성은 더 크다. 숄츠 독일 총리의 말은 우리에게도 시사점을 준다.

 

“군사력 대신 대화와 무역을 우선시하던 독일 외교정책 전통이 역사적 전환점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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