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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의 정신은 위대했다

일가(一家) 김용기 장로가 창립한 가나안농장이 내일(17일)로써 창설 50주년을 맞는다. 불과 56년 밖에 되지 않는 우리나라 건국 역사에 비추어 볼 때 50년 세월은 결코 짧은 것이 아니다.
1954년 11월에 세워진 가나안농장보다 더 유명한 것이 1962년 2월 농장 안에 병설 개교한 가나안농군학교다. 가나안농장과 농군학교는 공동체로서의 특이성 때문에 유명세가 붙기도 했지만 시대적 배경도 남다르다. 농장을 세울 때인 1954년은 6.25 한국전쟁이 정전된지 1년이 채 안되는 때인데다 농촌에서는 이미 이농현상이 일고 있는 시기여서 농장 따위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농장 안에다 농군학교를 창설한 1962년의 시대상황도 결코 만만치 않았다. 1960년3.15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4.19 혁명으로 자유당 정권이 무너지고, 같은 해 민주당 정권이 들어섰지만 1961년 5.16 군사쿠데타로 군부에 정권을 내 준지 채 1년이 안된 때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나안농군학교에게는 위기가 호기로 다가왔다. 1962년 2월 박정희 당시 최고회의 의장이 농군학교를 방문한 것이 계기가 돼 새마을운동이 촉발되고, 이후 농군학교는 정치인, 기업인, 공무원, 학생 등 각계 각층의 인사 61만명에게 심신일체의 교육을 시켜 국민적 정신무장에 일조를 했다. 이는 사설 교육기관으로서는 해내기 어려운 일이다.
1988년 창설자 김용기 장로가 타계했을 때 가나안의 미래에 대해 우려의 시각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기우에 불과했다. 오늘날 김용기 장로의 3남인 김평일 교장이 부친의 뒤를 이어 가나안을 한층 더 발전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1973년 원주에 제2 농군학교를 개설한데 이어 농군사관학교, 복민대학, 청소년교육원, 효도학교 등 부설 교육기관을 잇달아 개설했을 뿐아니라 해외 11개국에 진출해 가나안농군정신을 수출까지하고 있다. 또 제1 농군학교는 탈북자 교육과 함께 북한에 농군학교 설립을 추진 중이라니 기대도 되거니와 놀랍기도 하다. 가나안농군의 정신은 계속 이어져야하고, 이어질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특히 지난 50년이 가나안의 전반기 기반 조성기였다면 향후 50년을 후반기의 비약기로 삼아 세계 속의 가나안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맞이 않는다.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고 한 농군학교의 교훈을 본 받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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