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차를 맞은 우크라이나 전쟁은 푸틴의 시대착오적 고집으로 ‘전쟁의 안개(the fog of war)’가 언제 걷힐지 가늠하기 어려운 국면이 지속되고 있다. 막후에선 휴전이나 타협과 같은 외교적이고 평화적인 타협점을 모색하는 시그널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으나, 베트남전과 같은 역사적인 전쟁의 교훈에서 볼 때 시간이 걸릴 것은 확실하다. 2년차에 접어든 우크라이나전쟁은 몇 가지 교훈도 던져주었다. 지도자들이 자신의 군사력·경제력 등 능력을 과신하여 상황을 오판하기 쉽다는 것이 그 하나이고, 국가 간 단결이 침략자를 분쇄하는데 매우 효험 있는 수단임을 보여주었다. 물론 서방의 우크라이나 지원, 그 수면아래에는 각국 간에 미묘한 긴장도 흐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독일의 미온적 태도 등이 대표적 사례다.
한편으로 우크라이나전쟁은 디지털 폭탄시대의 서막을 열어가고 있다. 핵무기 경쟁 시대에 가장 큰 억지 용어가 MAD(Mutual Assured Destruction) 즉 상호확증파괴였다. 네가 공격하면 나도 너의 본거지를 쑥대밭으로 만든다는 논리다. 이 논리 때문에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케네디도 핵전쟁을 피하고 해군력을 통한 쿠바 봉쇄 방법을 택했다. 이제 디지털 심화시대로 접어들면서 MAD는 MAC로 대체되고 있다. MAC는 Mutual Assured Cyberdestruction을 말한다. 상호확증 사이버기반 파괴다. 백업시스템과 같은 전력기반을 파괴하고 나아가 운송수단을 정지시키는 공격도 그 공격범주에 들어간다. 재래식 폭탄이 물리적 고속도로를 파괴한다면, 디지털 폭탄은 데이터 고속도로를 파괴한다. 은행은 올스톱될 것이고, 제조업도 정지되며, 병원에 대한 약품공급도 차질을 빚을 것이다. 잡화점은 상품이 떨어져 진열하지도 못할 것이다. 판데믹 당시 도시 봉쇄를 연상하면 이해가 쉽다. 이런 혼란상은 천천히 터지는 중성자탄과 맞먹는다. 빌딩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서서히 죽어가는 것이다. 사람들을 살아가게 하려고 디자인한 시스템이 역으로 위험에 빠트리는 역설적 현상이 초래되는 것이다. 이 죽음의 물결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점차적으로 산업화이전 방식으로 되돌아갈지 모른다. 핸드폰도 사용할 수 없는 인터넷 이전 시대로 회귀할 지도 모른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에너지, 미디어, 금융기관, 비즈니스 및 민간영역까지 공격 범위를 확장하고 있는 것이 이런 우울한 미래의 전조다.
지금 각국은 전자기파 폭탄(electromagnetic pulse bomb)과 디지털 흐름을 마비시키는 무기 개발에 한창이다. 냉전시대와 격이 다른 새로운 무기경쟁이다. 이 경쟁이 염려스러운 것은 핵무기 사용 위협보다 사이버기반 파괴위협이 더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런 추세에 발맞추어 최근 ‘국가사이버 안보 전략’을 발표하고, 북한·중국·러시아·이란을 주요 ‘사이버적성국’으로 규정한데 이어 “미국의 국가안보나 공공안전을 위협할 수 없도록 법 집행과 군사 역량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이 국가들의 관련 단체들을 파괴하고 해체할 것”을 말했다. 그간 수비위주에서 공격적인 ‘정보방위(information defense)’를 선언한 셈이다. 우리도 지난해 입법예고한 사이버안보기본법안을 조속히 마무리하는 것이 ‘정보방위’의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