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의 건강보험이라고 불리는 실손의료보험(실손보험)의 보험금 청구 간소화가 의료계 반대 등으로 15년째 공회전 중이다. 논의가 지지부진한 사이 핀테크 업체들은 자체적으로 보험금 청구 서비스를 출시하며 사업을 키워나가고 있다.
한국소비자단체연합은 최근 공동성명서를 통해 "4000만 국민의 불편 해소를 위해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시급한 사안이며, 소비자 권익 제고를 위해 보험업법 개정안의 조속한 국회 논의와 통과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국회 정무위원회가 25일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고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관련 보험업법 개정안을 논의하는 데 따른 것이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소비자들이 보험금을 받기 위해 병원을 찾아 서류를 발급받은 후 이를 보험사에 제출하는 프로세스를 전산화하는 것을 말한다. 2009년 국민권익위원회의 권고로 처음 공론화되기 시작했으나 아직 제도화되지 못했다.
15년 동안 관련 논의가 미뤄졌던 이유는 의료계의 반발 때문이다. 의료계는 환자의 의료기록이 한곳에 모이면 예민한 의료 정보가 유출되거나 악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또 전산화된 의료 정보가 모인 중계기관이 비급여 진료 항목을 통제할 수 있다고도 우려한다.
지난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을 중계기관으로 지정하도록 하는 개정안은 의료계의 반대로 입법화가 무산됐다. 의료계는 중계기관을 둬 보험금 청구를 강제하지 말고, 핀테크와 병·의원의 자율적인 제휴를 통해 실손 청구 방식을 개선하자는 입장이다.
양측의 대립은 소비자들의 불편만 야기하고 있다. 지난 2021년 주요 소비자단체가 실손보험 가입자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절반에 가까운 47.2%가 보험금 청구를 포기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보험금 청구 포기의 가장 큰 이유는 청구 금액이 소액인 점과 증빙 서류를 종이로 발급받아 제출해야 하는데 시간이 없고 번거로워서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 사이 핀테크 업체들은 세를 확장하고 있다. 네이버파이낸셜과 카카오페이 모두 보험금 청구 서비스를 개시하고 종이 서류 제출 없이 의료기관을 조회해 바로 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현재는 플랫폼과 개별 병·의원의 제휴만으로 서비스가 가능하기 때문에 범위에 한계가 있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민간 핀테크 업체와 제휴된 병원은 전체 의료기관 9만 9000곳 중 150곳에 불과하다.
보험업계는 소규모 병·의원은 계속 생겨나는데, 민간 핀테크를 통한 실손 청구는 전 의료기관의 참여가 어려워 반쪽짜리가 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핀테크뿐 아니라 보험사들도 실손 청구를 편리하게 할 방법을 개발하기 위해 병·의원과 제휴를 늘리고 있다"며 "소비자들이 귀찮아서 청구하지 않는 소액 의료비 대부분은 동네 병원에서 나오는데 이 경우 제휴가 안 된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 경기신문 = 고현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