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학자 눈뫼(雪岳) 한갑수 선생이 타계하셨다. 향년 아흔 하나이시다. 선생의 지난날 발자취를 소개하는 것은 새삼스러워 접어 두기로 한다.
선생께서는 공직에서 물러나신 이후 각급 연수원과 대기업의 임직원을 상대로 한 강의에 열중하셨다. 필자가 선생을 가까이 모실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일 때문이었다. 수원의 한 연수원 교수부장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 한갑수 선생을 고정 외래 강사로 초빙한 덕에 주옥같은 말씀을 늘 들을 수 있었다. 이 때 선생을 가까이 뵈면서 배운 것이 많았다.
선생은 나이에 관계없이 하대 말을 쓰지 않으셨다. 아들이나 딸 벌이 아니라 증손자벌 되는 젊은이 한테도 꼭 존댓말을 쓰셨다. 또 잠시 저의 사무실에서 쉬실 때 웃자리를 권하였지만 단 한번도 앉으신 일이 없다. 그리고 좌정하셨을 때는 두 손을 무릎 위에 단정히 얹어 놓고 앉으셨지, 몸을 뒤로 제치거나 삐딱이 앉으시지 않았다. 강의는 2시간동안 연속 강의를 하시는데 어김없이 110분만에 끝내셨다. 10분은 연수생들에게 휴식시간을 주시기 위해서 였다. 강의가 끝나면 1주일에 한 두번씩 수원 종로통에 있는 냉면집으로 모셔서 냉면을 대접해드렸는데 선생께서는 냉면을 하루 두 끼니를 잡수셔도 좋다하실만큼 냉면을 즐겨 하셨다. 삶은 돼지고기를 상추에 싸먹는 쌈을 좋아하셨는데 이 때 소주는 한잔만 드셨다. 쌈을 다 잡수시고 나면 물냉면을 맛있게 드시는데 잡수시는 모습이 너무 단정해서 버릇없이 먹는 필자로서는 조심스럽기 그지 없었다.
선생은 한글운동가 답게 한문은 잘 쓰지 않으셨다. 그런 선생께서 필자에게 3점의 붓글씨 작품을 주셨는데 그 중 한점이 한문 작품이었다. ‘父兮生我母兮鞠我 哀哀父母育我句力勞’ 거실에 걸려있는 편액을 보면서 부모님의 은덕을 되새겨 왔는데 이제는 선생님을 뵙듯이 우러러 보게 되었다. 선생님의 명복을 빌고 빕니다.
이창식/주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