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드값을 내지 못해 대금 결제를 미루는 리볼빙(일부금액이월약정) 잔액이 1년 새 9500억 원 가까이 늘어났다. 금융당국은 부실을 대비하기 위한 방안을 검토 중이나 압박이 커질 경우 급전이 필요한 취약 차주들이 피해를 볼 수 있어 섣불리 나서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말 기준 카드사의 리볼빙 잔액은 7조 1196억 원으로 지난해 1분기보다 16%(9426억 원) 증가했다.
리볼빙은 신용카드 결제 대금 중 일부만 먼저 결제하고 나머지를 다음 달로 이월하는 서비스다. 연체 없이 상환을 연장할 수 있지만 높은 수수료를 부담해야 한다. 7개 전업 카드사(신한·삼성·KB국민·현대·롯데·우리·하나)의 평균 리볼빙 수수료율은 17.06%다.
1년 새 리볼빙 잔액이 늘어난 것은 가계의 주머니 사정이 나빠진 탓이다. 대부분의 리볼빙 이용자는 당장 카드값을 내지 못하는 다중채무자나 저신용자들이다.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로 인해 생활비가 부족해지자 일단 필요한 물건을 산 뒤 리볼빙으로 전환한 것으로 풀이된다.
카드사 관계자는 "리볼빙은 당장 카드 대금 납부가 어려운 고객들이 주로 이용하는데, 그만큼 가계 상황이 악화했다는 의미"라며 "카드사들이 리볼빙 마케팅을 특별히 늘리는 분위기도 아니어서 수요가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해 카드사들의 조달금리가 상승했던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지난해 금리 인상과 레고랜드 발 자금경색 사태를 겪으며 여전채 금리가 크게 올랐고, 이에 카드사들이 카드론(장기카드대출) 한도를 축소하자 대출이 막힌 차주들의 리볼빙 사용이 늘어난 것이다.
올해 1분기 8개 전업카드사의 카드론 신규 취급액은 9조 9267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5% 줄었다. 저신용자 대상 카드론 신규 취급액은 2021년 1분기 3조 4814억 원에서 지난해 4분기 1조 9749억 원으로 2년 새 43%가 감소했다.
금융감독원은 리볼빙 증가 추이와 수수료 변동 등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부실로 이어질 위험이 큰 만큼 대손충당금을 추가로 적립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다만, 기준이 강화되면 취약 차주들의 급전 창구가 막힐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손충당금을 확대하고 수수료율을 인하하면 카드사들의 수익성에 영향을 미쳐 리볼빙 축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어서다. 지난해 말 카드사와 저축은행들은 리스크를 관리한다는 명분으로 토스·카카오페이·핀다 등 대출 비교 플랫폼을 통한 대출을 중단한 바 있다.
금융권에서는 여전채 금리가 안정을 찾은 만큼 리볼빙 수수료율도 하락세에 접어들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지난해 10월 레고랜드 사태 이후 6%대까지 치솟았던 여전채(AA+) 3년물 금리는 지난 24일 3.898%까지 떨어졌다.
[ 경기신문 = 고현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