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좀 일찍이 까불었거든, 나이 먹으면서 좀 반성이 되더라고. 까불지 말고 살자 이거지."
`순풍산부인과' 등 TV 시트콤으로 인기를 모아온 탤런트 오지명(65)씨가 다음달 3일 늦깎이 감독 데뷔작 `까불지마'를 관객들에게 선보인다.
동료의 배신으로 15년 간 '큰집' 생활을 겪은 뒤 세상에 나온 '형님들'의 '모험'이 영화의 주된 줄거리. 오씨는 스스로 주인공을 맡아 최불암과 노주현, 김학철, 김정훈 등과 호흡을 맞췄다.
23일 오후 영화의 첫 시사회후 종로의 한 커피숍에서 기자들을 만난 오 감독은 양 팔을 앞으로 펼치는 특유의 손짓을 섞어가며 어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걸쭉한 입담을 과시했다.
"영화, 거지 같죠? 그래도 지루하지 않았다니 다행이네"라며 인사를 건넨 그는 솔직한 얘기로 시원스럽게 기자들과 대화를 나눴다.
--첫 영화의 첫번째 시사회를 마쳤다. 소감을 말해달라.
▲아침부터 이 잘난 것(시사회) 하나 하려고 여기가(관자놀이를 가리키며) `빠개질' 것 같다. 영화를 보니 이것보다는 좀 더 나을 수 있었겠다는 아쉬움이 든다. 애로점이 많이 있었지만 최선을 다해 만들었다.
--중견 배우들이 함께 뭉쳤다. 어떤 계기에서인가.
▲요즘 젊은 사람들이 바빠서 그랬다. 그 사람들 불러다가 일하기가 참 어렵다. 게다가 내가 감독한다고 하니까 더 그렇다. 그래서 연기력이 있으면서 좀 덜 바쁘신 분들을 불렀다. 배우에 연연 안했다(웃음).
나는 원래 그런(영화 속의) 인물하고 비슷하다. 그냥 그대로 가져다 놨다. (나는) 무식하고 말도 잘 생각 안 나고 스무고개를 해야 단어가 떠오른다.
중견과 신인은 똑 같다고 본다. 중견배우라고 해서 다 연기 잘하고 어쩌고 하는 말은 다 거짓말이다. 오래 했다고 연기 잘하면 나는 박사 하게? 요즘엔 경력이나 인물이나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이문식이나 송강호 같은 친구들 인기 좋은 것 봐라. 요즘 젊은 사람들은 세련됐다. 연기만 잘하면 된다.
--뒤늦게 영화 연출에 도전한 이유는 무엇인가?
▲감독이 뭐 별거 있나? 그냥 여기서 한 40년 일하다 보니 우물쭈물 (연출)하게 됐다.
요즘 영화가지고 워낙 얘기도 많고 손님도 많이 들고 해서 한 번 보여줘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했다.(영화를 만들었다)
--각 배우들을 캐스팅하게 된 계기를 알려달라.
▲최불암씨는 대학 와서 연극을 하면서 알게 됐다. 그때는 날씬했는데 연기를 참 잘했다. 당시 (최불암의) 어머니에게 술도 얻어먹고 각별히 지냈다. 최불암 같은 경우는 영화를 많이 안해서 시켜봤다.
노주현은 우리들 추해보이는 중에 인물 반반한 `놈' 하나가 필요했다. 노주현 하면 70년대 우리 멜로를 주름잡던 배우다. 나이 들어 많이 `쭈글'해졌지만 그래도 잘생겼다.
김정훈의 경우 가수할 때부터 내가 `참 예쁘게 생겼다'는 얘기를 주위에 많이 했는데 배우로 왜 못 클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출연)해줬으면 하고 한 번 대본을 줘봤더니 뜻밖에 한다고 하더라. 나중에 들었는데 최불암이나 오지명이랑 같이 연기한다는 게 좋았다더라. 그 얘기 듣고 어떻게든 예쁘게 찍어주려고 힘을 썼다.(웃음)
호루라기(이진성), 이 친구는 방송국에서 어떻게 잘못돼서 저질로 찍혔다는 얘기를 들었다. 호루라기나 휙 불고. 뭐 얼굴도 잘생기고 그랬으니 호루라기면 어떠냐 하고 출연시켰다.
--액션 연기가 많다. 대역은 어느 정도 들어갔나?
▲한 절반 정도 된다. 나는 날쌔니까 주먹으로 (연기)하는 게 많았고, 최불암은 무게가 좀 나가니까 (몸을) 튼 것이 많았다. 위험할 뻔한 적은 있었지만 다행히 다친 사람 없이 잘 됐다.
--영화를 통해 어떤 얘기를 하고 싶었나?
▲겸손하고 까불지 말라는 얘기다. 내가 일찍이 좀 까불었다. 쾌락적이고 현실적인 것만 너무 추구하고. 나이 먹으면서 반성을 조금씩 하게되더라. 젊은 친구들에게 지금은 우리 때보다 살기가 편해졌지만 쉽게 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자, 이런 얘기를 해주고 싶었다.
--제작비는 얼마 정도 들었나?
▲마케팅비까지 35억 원 정도 된다. 70~80만 명은 들어야 수지가 맞는다. 그 정도는 들어야 체면이 설 것 같다.
--왕년에 영화에 출연했던 얘기를 들려달라.
▲대학에 다닐 때 연극을 했는데 어르신들은 그때 내가 경제학 공부를 하는 것으로 알았다. 사실 경제학의 `경'자도 모르는데. 특별히 공부 한 것 없이 이것 저것 하다가 군대에 가서야 희곡도 보면서 연극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했고 제대한 뒤 본격적으로 연극을 했다. 그때 김승호 선생이 내 얼굴을 보고 영화를 권유했다.
정창화 감독이 내 액션을 좋아해서 여러 차례 홍콩에 데려가려고 했다. 왕 우 라는 칼싸움 잘하는 친구하고 나하고 붙이려고 했다. 쇼브라더스에서도 관심이 많았고. 하지만, 출연료 문제도 있고 해서 그냥 한국에 남았다. 액션 영화만 한 150편은 찍은 것 같다. 다섯 편을 한꺼번에 찍은 적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