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최부자하면 지금도 많은 사람에게 회자된다. 임진왜란의 후폭풍으로 어수선하던 1600년대 초부터 재산을 일구기 시작한 최진립은 유교사상에 입각한 경영철학을 철저히 구현 300년간 부를 지켰다. 이는 이태리의 옛 공화국 피렌체부자 메디치가(家)가 유지했던 200년보다 100년이 긴 것이었다. 기독교정신에 입각한 부의 수성이 동양의 그것보다 견고치 못한 것 같기도 해 재미있다.
최진립의 독특한 경영철학은 따지고 보면 상식선이지만 철저히 실행했다는 것이 남다르다. 주위에 사람이 끊이지 않게 하고 덕을 베풀었던 것이다.
현종조인 1671년 삼남지방에 큰 흉년이 왔을 때 최진립은 곳간을 헐어 바깥마당에 솥을 걸고 매일 같이 죽을 쑤었다. 지금도 죽을 쑤었던 곳을 할인당이라고 하여 남아 있다. 이때의 교훈으로 최진립은 내 집 사방 백리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도록 할 것을 후대에 일렀다. 또 최부자는 소작인 등에 군림하지 말고 지나치게 재산을 불리지 말 것을 훈교했다. 최부자는 자신을 낮춰 상대가 경계하지 않도록 하고 부를 위해 최소한의 지위만을 유지할 것도 강조했다. 부유해도 교만하지 말라(富而無驕)는 유가사상을 경영에 접목시킨 것이다.
유가적 형이상학을 실사구시 함으로써 최부자는 부귀를 일구고 지킬 수 있었던 것이다. 기독교적 도덕률인 “가진 자에게 사회가 요구하는 도덕적 요구” 노블레스 오블레쥬(Noblesse Oblige)를 충족시키고도 남는 부의 동양적 품위를 지킨 것이다.
요즈음 종합부동산세로 가진 자 특히 서울 강남의 알부자들의 반발이 시끄럽다. 허지만 이들의 항변은 별무소득이다. 부이무교치 않는 싸구려 부자들도 이제는 사회적 품위를 지킬 줄 알았으면 좋겠다. 막연한 기대가 아닌지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