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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통행 금지제도가 없어진 것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집권하던 제5공화국 때였다. 자유당 때부터 있었던 야간통행 금지는 밤 12시부터 이튿날 새벽 4시까지 6시간 동안이었는데 이는 분명한 사생활 침해인 동시에 인권의 제약이었지만 그 누구도 입을 뻥긋하지 못했다. 반공을 국시로 하던 이승만정권은 오열(간첩) 방지를 위해,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은 국가안보와 사회질서 유지 차원에서 심야 행동을 제한했다.
그런데 박정권 때 보다 사회 불안이 더 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던 5공 때 통금을 없앤 것은 의외였다.
통금은 조선시대에도 있었다. 좮경국대전좯에 따르면 “궁궐 문은 초저녁에 닫고 해뜰 때 열며 도성 문은 인정에 닫고 파루에 연다”라고 되어 있다. 인정은 통금 시작을 알리는 스물 여덟 번의 종소리를 말하고, 파루는 통금 해제를 알리는 서른 세 번의 종소리를 말한다.
인정 때 종을 스물 여덟번 친 것은 우주의 일월성신 28수에 고하기 위함이었고, 파루 때 서른 세번 친 것은 하늘의 33천에 알려 그날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하는 뜻이었다.
통금제도가 있다고 해서 밤에 다니는 사람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권력기관에 종사하는 경찰관, 특무대·중앙정보부원, 기자 등은 통금 때도 유유히 다닐 수 있었다. 일종의 특권이라 할 만한 것이지만 부작용도 많았다.
조선시대 역시 통금 특례자는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성균관 학생들이었다. 효종은 성균관 학생들에게 은으로 만든 술잔을 하사했는데 이 은잔이 야간 통행증 역할을 했던 것이다. 그들은 밤늦게 제사를 지낼 수도 있고, 위급한 일이 생기면 왕에게 상소할 일도 더러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유생들에게 만은 통금을 예외로 하였다. 흔한 것이 술잔이니까 가짜 유생도 있을 법 했지만 조선의 제도가 그렇게 허술하지 만은 않았다. 은잔에는 ‘성균관에 하사한다’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창식/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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