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족 대명절인 추석을 보내면서 상여금 등 여유자금이 생기자 재테크에 관심을 갖는 투자자들이 늘면서 상장지수펀드(ETF)에 투자심리가 쏠리고 있다. 반도체·2차전지 등 증시를 이끌던 주도주가 사라진 데다 올해 1·2분기 상승했던 코스피가 최근 2400선을 간신히 사수하는 등(9일 종가 2408.73) 국내 증시가 '3고(고금리·고유가·강달러)' 현상, 그리고 중국 부동산발(發) 불안에 짓눌려 하반기 들어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서다.
국내 ETF 시장은 무섭도록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지난 6월 100조 원을 돌파한 ETF 시장 규모는 8월 말 106조 원까지 성장했다. 코스피 시가총액의 5%가 넘는 규모다. 일평균 거래대금 또한 증가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2조 7828억 원이었던 일평균 거래대금은 8월 말 기준 4조 7358억 원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 K-반도체 회복 기대감에 반도체 ETF 관심↑
투자자들이 많은 관심을 보인 분야는 업황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상대적으로 큰 반도체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 4일 기준 최근 일주일간 국내에 상장된 반도체 기업 관련 6개 ETF의 순자산은 1300억 원 증가했다.
국내 상장된 반도체 ETF는 ▲TIGER Fn반도체 TOP10(미래에셋자산운용) ▲TIGER 반도체(미래에셋자산운용) ▲KODEX반도체(삼성자산운용) ▲KBSTAR비메모리반도체액티브(KB자산운용) ▲SOL 반도체소부장Fn(신한자산운용) ▲HANARO Fn K-반도체(NH아문디자산운용) 등이다. 이 중 가장 규모가 큰 'TIGER Fn반도체TOP10' ETF는 지난 5일 순자산 5000억 원을 돌파했다.
반도체 ETF로 투자금이 몰리는 가장 큰 이유는 업황이 회복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최근 인공지능 열풍과 함께 고대역폭메모리(HRM) 수요가 급증했고, 이에 올해 하반기와 내년까지 반도체 업황의 개선세가 뚜렷해질 것이라는 의견에 힘이 실린다.
고영민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2024년 말까지 가격 상승 흐름이 이어질 수 있는 빅사이클의 초입으로 보고 있다"며 "반도체 업종은 매크로에 따른 시장 조정 이후와 내년까지 펀더멘털 개선세가 뚜렷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 '공포에 베팅' 코스닥인버스 ETF, 10%대 수익률 기록
국내 증시가 내리막을 타면서 하락에 베팅하는 인버스 ETF의 수익률이 고공행진하고 있다. 지난달 '코스닥150 선물 인버스' 상품들이 수익률 10%대를 기록하며 상위 4∼8위에 올랐다.
이 중 수익률이 가장 높았던 ETF는 ‘TIGER 코스닥150 선물 인버스’로 10.94%를 기록했으며, KODEX 코스닥150 선물 인버스가 10.84%, KOSEF 코스닥150 선물 인버스’가 10.7%의 수익률을 보였다. 이어 ▲ARIRANG 코스닥150 선물 인버스(10.54%) ▲KBSTAR 코스닥150 선물 인버스(10.51%) 등이 뒤를 이었다.
해당 상품들은 ‘코스닥150 선물 지수’ 일간 수익률의 마이너스(-) 1배 수익률을 추구하는 ETF로, 해당 지수가 내릴수록 수익을 낸다. 최근 미국 국채 금리가 급등으로 글로벌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코스닥지수가 한 달 동안 9.41% 하락하는 등 국내 증시도 힘을 내지 못하자 인버스 ETF 상승률이 상승한 것으로 풀이된다.
◇ 갈 곳 잃은 자금 '파킹'…단기자금 ETF 관심↑
증시 약세 등으로 인해 갈 곳을 잃은 자금은 초단기채권 펀드로도 몰리고 있다. 투자 손실을 벗어나려는 투자자들이 이른바 '파킹형' 상품인 단기자금 ETF로 투자 자금을 옮기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내 CD금리 ETF 설정액은 8월 말 7조 3622억 원에서 지난달 26일 9조 5458억 원으로 30% 가까이 늘어났다. CD금리 ETF는 국내 증시가 부진할 때마다 자금이 유입돼 왔다.
대표적인 상품인 삼성자산운용의 ‘KODEX CD금리 액티브(합성)ETF’에는 최근 한 달간 1조 1865억 원의 자금이 유입됐다. 해당 상품은 지난 6월 출시된 이후 63영업일 만에 순자산 2조 원을 돌파하며 업계 최단 기록을 세운 바 있다. 같은 기간 미래에셋자산운용의 ‘TIGER CD금리투자KIS(합성) ETF’ 역시 1조 원이 넘는 투자금이 몰렸다.
유아란 삼성자산운용 ETF운용팀 매니저는 “증권 계좌에서 자금을 이동시키지 않고 간편하게 ETF를 활용해 투자 대기 자금을 운용하려는 수요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 투자자들, 해외로 눈 돌리자…외국기업 투자 ETF 출시 활발
이처럼 ETF가 투자자들 사이에서 많은 관심을 받자, 자산운용사들의 ETF 신상품 경쟁도 활발해지고 있다. 특히 최근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투자자들이 늘어나면서 일본과 미국 등 해외 기업에 투자하는 ETF를 출시하고 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일본 반도체 제조 장비 기업에 투자하는 'TIGER 일본반도체FACTSET ETF'를 출시했다. 해당 ETF는 디스코·레이저텍 등 반도체 제조와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대표 기업들을 골고루 포함하고 있다.
한화자산운용도 국내 최초로 일본 반도체 소부장 기업에 투자하는 'ARIRANG 일본반도체소부장Solactive ETF'를 상장했다. 도쿄일렉트론·신에츠화학공업 등 일본 도쿄 증권 거래소에 상장된 반도체 소부장 대표 기업 20종목에 투자한다. 올해 시장을 주도한 반도체 테마주에 환 노출형 상품으로 '엔저' 환경에서 환차익을 노릴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미국 시장도 공략한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미국 상장 시가총액 상위 1000개 기업 중 잉여현금흐름 수익률이 높은 100개 기업을 선별해 투자하는 'TIGER 미국캐시카우100 ETF'를 출시했다. 잉여현금흐름이란 기업이 벌어들인 수익 중 세금과 영업비용, 설비투자액 등을 제외하고 남은 현금을 말한다. 기업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을 보여주는 주요 지표다.
◇ 안정적 수익 원한다면 '채권형' 주목
갑자기 생긴 씨드머니를 목돈으로 불리기 위해 안정적인 장기 투자를 원하는 투자자들의 수요에 맞춰 채권형 ETF도 활발히 출시되고 있다.
삼성자산운용은 만기 매칭형 채권 ETF 'KODEX 24-12 은행채 액티브 ETF'를 내놨다. 해당 상품은 신용등급 AAA인 특수 은행채와 시중은행채에 투자한다. 만기까지 보유하면 매수 시점에서 예상한 기대 수익률 수준의 이자 수익을 얻을 수 있어 정기 예금과 비슷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해당 상품은 상장 후 12영업일 만에 순자산 5000억 원을 돌파했다.
하나UBS자산운용도 만기 매칭형 채권ETF 'KTOP 25-08회사채(A+이상)액티브 ETF'를 출시했다. 주요 투자 대상은 발행 잔액 500억 원 이상으로 만기가 약 2년 남은 A+등급 이상의 회사채와 금융채다. 2년 만기 상품으로 만기까지 보유하면 매수시점에서 예상한 기대수익률 수준의 이자수익을 얻을 수 있다. 만기 전 금리가 내려 채권 가격이 상승하면 이를 팔아 매매차익을 챙길 수도 있다.
[ 경기신문 = 고현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