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문화원(원장 李鼎泰)이 심훈(沈薰)의 소설 ‘상록수’의 주인공으로 널리 알려진 최용신(崔容信) 기념관을 건립하기로 하고, 엊그제 ‘최용신기념관 건립에 따른 제의’라는 포럼을 가진 것은 매우 주목할만한 일이면서 격려해 맞이 않을 일이다. 알다시피 최용신은 여성 농촌계몽가다. 그것도 일제 식민지하 암흑기에 박해를 받는 농촌 사람들을 일깨우기 위해 온몸을 불사른 항일 민족계몽가였다.
최용신은 구한말이 멸망하기 1년 전인 1909년 8월 함경남도 원산읍 두남리에서 아버지 최창희의 둘째 딸로 태어났다. 가세가 몹시 빈곤했지만 주위의 도움으로 1928년 루씨여고를 거쳐 감리교협성신학교까지 졸업할 수 있었다. 1931년 서울YMCA 봉사요원으로 배치돼 상경한 그녀는 얼마 후 무지와 빈곤이 전부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닌 옛 수원군 반월면 4리 천곡리(泉谷里)에 발을 들여 놓았다. 일명 샘골부락으로 불리우는 벽촌에 정착한 이래 1935년 1월 23일 새벽 못다한 일의 여한을 안고 눈을 감을 때까지 오직 샘골과 샘골 사람들을 위해 온몸을 불살랐던 것이다.
올해로써 그녀가 태어난지 95주년, 타계한지 69년 째가 된다. 때문에 최용신의 얼이 살아 숨쉬고 있는 안산 땅에서 기념관 건립 운동이 태동했다는 것은 다소 뒤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반길 일이다.
이날 포럼에서 발제자로 나선 김호일 중앙대 교수는 최용신이 동네 어린이는 물론 아녀자들과 함께 흙과 돌을 머리에 이고 날라 학당을 지은 고행담을 상기시키면서, 기념관을 당시의 모습으로 재현해 역사성을 살리는 방법과 친근감과 편리성을 강조한 현대식 건축 양식을 채택할 것인가의 두가지 방안을 내놓았다. 그러면서도 발제자는 전자 쪽에 무게를 두는 의견을 내놓았다고 한다.
기념관 건축양식의 선택문제는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이 보다 중요한 것은 까맣게 잊고 있었거나, 아니면 기억하고 있으면서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던 지난날을 반성하는 일이다. 이번에 기념관 건립 태동은 최용신의 제자였던 홍석필 장로가 1억 5천만원의 사재를 기념관 건립 기금으로 안산시에 기탁한 것이 단초가 됐다고 한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용단을 내린 그에게 찬사를 보내면서, 과연 그 선생에 그 제자라할만 하다는 말을 덧붙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