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은 동물학적으로는 종족보존을 위한 통과의례로 간단히 볼 수 있지만 사고와 문화ㆍ문명을 갖고 미래에의 도약의지가 있는 인간에게는 이 이상의 독특한 의미가 있다. 그러나 고대사회에서의 혼인은 동물학적 요소의 혼인이 성행했고 이의 잔재가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 남아 있다.
강자생존 원칙이 엄존했던 원시사회는 물론 국가형태를 갖추고 씨족문화가 어느 정도 정착했던 삼국시대 특히 고구려에서조차 약탈혼이 성행했다. 씨족간 분쟁 또는 부족간 분쟁이 있었던 당시에는 부녀자를 전리품의 하나로 인식했던 것이다. 이 약탈혼은 고려 때에도 이어져 왔으며 조선시대에는 이의 잔재인 과부약탈이 있었다.
이에서 발전한 것이 대낙혼(代諾婚)이다. 부권혼(父權婚)이라고도 하는 이 혼인은 조선조 혼례의 대명사다. 이 대낙혼에는 일정한 노역을 제공하는 노역혼, 혼인의 대가를 지불하는 유상혼 등이 있었다. 지금도 전해져 오는 데릴사위, 민며느리 등도 대낙혼의 일종이다. 이는 채노적(債奴的) 성격이 강해 대개의 경우 상민계급에서 성행했다.
이러한 혼인전통의 큰 틀은 여성을 남성의 소유물로 보고 있는데 있다. 2500년 전 공자에게서도 이같은 여성관을 엿볼 수 있다. 공자는 자신의 딸을 제자 공야장(公冶長)에게 시집보내면서 딸의 의사는 일체 반영치 않았다. 공자는 오로지 공야장의 반듯한 자세만을 보고 사위로 맞이한 것이다. 요(堯)임금은 한술 더 떠 두 명의 딸을 순(舜)임금에게 시집보냈다. 고대 사람들이 여성을 인격체로 보지않은 대(對)여성관의 일면이다.
서구사상이 들어오면서 이 같은 남성위주 혼인은 사라지고 공락혼(公諾婚)이 자리 잡았다. 며칠 전 박정희 전대통령의 아들 박지만이 결혼해 장안이 떠들썩하다. 나이차를 극복한 공락혼인데다 박정희에 대한 향수가 오버랩 되었기 때문이다. 바둑기사 서봉수의 결혼을 보는 눈이 곱지 않은 것과 대조적이다. 滿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