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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 칼럼] 마돈나 주연의 ‘에비타’가 생각나는 요즘

마돈나 주연의 1997년 영화 ‘에비타’는 뮤지컬 영화였다. 마돈나의 빼어난 가창력으로 ‘돈 크라이 포 미 알젠티나’라는 영화 삽입곡이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모으기도 했다. 그 노래 덕에, 아니 노래 탓에 에비타, 곧 에바 페론이라는 여인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오해의 동정심을 지니고 있는 듯 싶다. 본명이 에바 마리아 두테르테였던 에바 페론은 가난한 농부의 딸로 태어났고 나이트 클럽의 댄서 등 힘든 삶을 살아 오다 노동부 장관이었던 후안 페론을 만나 대통령 영부인의 자리까지 올라 온 여인이었다. 그녀의 삶은 꽤나 격정적이었는데 그건 남편이 대통령이 되는 과정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그녀는 33살이라는 아주 이른 나이에 요절했다.

 

에바 페론은 남편에게 결정적인 영향력을 끼칠 만큼 자신만의 정치력을 과시했으며 그만한 인맥도 지니고 있었던 사람이다. 이른바 페론이즘이라고 하는 포퓰리즘 정치의 행태가 후안 페론이 아니고 후안과 에바의 합작품으로 여겨지는 이유이다. 진영 정치, 편 가르기, 빈민과 영세민을 동원한 인기 영합 정책으로 아르헨티나의 초기 민주주의는 엉망이 됐다. 에비타, 에바 페론을 보고 있으면 자꾸 누군가가 연상이 된다. 특히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성녀(聖女)로 인식되기 위한 이미지 정치에도 수완을 보인 점 등을 보면 에바 페론이 후세의 정치인, 영부인 같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외국인으로 다른 나라에서 대통령이 된 사람은 페루의 알베르토 후지모리라는 인물이 있다. 2차대전 직후 일본인들 중 상당수가 페루로 농업이민을 갔고 후지모리는 일본 쿠마모토현에서 이주해 온 부모를 두고 페루에서 나서 자랐다. 페루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더 클 수밖에 없는 인물이다. 그러나 평생 일본 국적도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본명은 후지모리 켄야(藤森謙也)이다. 미국 유학을 했으며 1980년대 페루 바르가스 요사 정권의 극심한 실정, 특히 경제 위기를 파고 들어 1990년 대통령에 당선됐다. 10년간 집권했고 독재 정치가 진행됐다. 이른바 후지모리즘이 펼쳐졌다. 특히 반공 이데올로기를 내세운 정적 탄압이 기승을 부렸다. 그러나 후지모리즘의 요체는 부정 축재이다. 결국 후지모리는 페루를 진정한 조국으로 보기 보다는 자신의 이민 가족사를 성공시킬 대상에 불과했던 셈이다. 후지모리는 3선 출마 금지 조항을 없애기 위해 헌법도 뜯어 고치며 온갖 정치적 만행을 저질렀고 그 책임을 물어 25년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이중국적을 가지고 일본으로 도피한 후 팩스로 대통령 사직서를 보내기도 했다. 이후 일본 참의원 선거에도 출마하는 등 극도의 정치적 기행을 펼친 인물이다. 페루의 국격은 엉망진창이 됐다. 그 나라의 정치를 꼭 그 나라 사람만이 해야 한다는 법칙은 없다. 세계 동포주의의 사상을 지니고 있으며 그 나라, 그 지역의 정서를 잘 체득한 인물이라면 거부할 이유가 없다. 다만 너무 지나치게 그런 인물에게 뭔가를 기대하는 건 다소 삼가해야 할 일이다. 후지모리도 초창기 지지율이 60~70% 수준이었다. 모든 건 과유불급이다. 한국의 정치판이 점점 남미를 닮아 간다. 이번 주말에 ‘에비타’를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OTT 웨이브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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