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가 한국에 들어 온 것은 임진왜란 이후다. 그러니까 4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셈이다. 처음에 담배가 들어 왔을 때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피웠고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맞담배 질 이였다.
이른바 담배 열풍이 분 것이다. 당시 한국의 전통 문화의 하나였던 차(茶)문화가 갑자기 퇴조하고 그 자리에 담배가 들어선 것이다. 인조반정에 참여했던 정치가이며 문장가인 장유는 “담배가 쓰고 독이 있는데도 피우지 않는 사람이 없다”고 했을 정도였다. (계곡만필)
남녀노소가 없던 담배에 끽연예절이 생긴 것은 광해군 때였다. 광해군은 몸이 약해 담배연기를 싫어했다. 이에 따라 신하들이 어전에서 담배 피우기를 삼갔고 이러한 행동양식이 민가에 내려와 윗사람 앞에서 금연하는 풍습이 굳어졌다.
담배수요 급증으로 일반 농작물의 생산에도 차질을 빚었다. 담배농사가 잘 되는 경상도 울산지방과 전라도의 진안, 장수 등지에서는 담배를 생업으로 삼았다. 이에 조정에서는 비옥한 땅에는 담배를 심지 말라고 칙령을 내리기도 했으나 지켜지지 않았다.
한국 사람과 애환을 같이 한 담배가 일제에 들어와서는 귀한 몸이 되었다. 담배를 조선총독부가 직접 관리하는 전매제도가 된 것이다. 인기 있는 제품은 구하기가 어려워 뒷거래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이 제도는 광복이후에도 이어졌고 물량이 딸린 때는 담뱃집에 장사진을 치기도 했다.
그러던 것이 80년대에 접어들면서 담배 유해론이 대두, 퇴조하기 시작했다. 담배제조와 판매를 독점하고 있는 한국담배인삼공사는 회사 이미지가 나쁘다며 회사명에서 슬그머니 담배를 뺐다. 담배회사가 담배를 괄시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정부는 한발 더 나아가 끽연자를 괄시한다. 금연구역 확대도 성이 안차 담뱃값을 계속 인상, 끽연자를 궁지로 몬다. 끽연자 괄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