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홍콩 항셍국가기업지수(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사태와 관련해 판매 은행들이 녹취·설명확인서 등 소비자 피해 예방 조치를 취했다고 해명했던 것에 대해 '면피용'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29일 이 원장은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자산운용사 최고경영자(CEO) 간담회를 마친 후 기자들과 만나 “일부 은행에서 (금감원이) 묻기도 전에 ELS와 관련해 소비자 피해 예방 조치를 했다고 말하고 있다”며 “저희에겐 (은행의 말이) 소비자 피해 예방 조치를 취했다기보단 본인들 면피 조치를 했다고 느껴진다”고 말했다.
지난 2021년 이후 H지수가 꾸준히 떨어지면서 해당 지수를 기초자산으로하는 ELS들의 대규모 손실이 불가피해진 상황이다. 투자자들이 은행으로부터 투자 위험을 고지받지 못했다며 불완전판매를 주장하자 금감원은 시중은행과 증권사를 대상으로 조사에 나섰다.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에서 판매한 H지수 연계 ELS 중 내년 상반기 만기가 도래하는 규모는 8조 4100억 원이다.
이 원장은 "금융투자상품 관련 자기책임은 존중한다"면서도 “적합성의 원칙, 금융소비자보호법상 상품 판매 절차 규제 본질을 생각해 보면 지금 은행처럼 말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소비자가 충분히 상품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게 적합성 원칙의 본질적인 내용”이라며 “고위험 고난도 상품을 은행 창구에서 특정 시기에 몰려서 판매됐다는 것만으로도 적합성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의구심을 품어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H지수가 지난 2016년 폭락했던 전례가 있고 2018년에도 급락했던 적이 있다며 그로부터 시간이 많이 지나지 않았음에도 이를 일반 투자자에게 권유한 것이 적합했던 것인지 의문을 제기했다. 특히 노후자금을 맡긴 고령의 투자자들의 경우 은행에서 고위험 상품을 권유한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고 언급했다.
이 원장은 “노후 보장 목적으로 만기가 다 된 정기예금을 재투자하고 싶어 하는 70대의 투자자가 있다면, 설명 여부를 떠나 이런 분께 수십 퍼센트의 원금 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 고위험 상품을 권유하는 게 적정했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ELS 상품 구조를 노령의 소비자나 금융 투자 경험이 없는 이에게 짧은 시간 내에 설명해서 이해시키는 게 가능한지도 의문”이라고 했다.
특정 은행에서 과도하게 판매가 집중됐다는 점도 비판했다. 그는 “한도가 없는 수십 개 증권사에서 판매된 걸 합친 것보다 KB국민은행 한 곳에서 판매한 물량이 많다”며 “노후 자금을 가지고 신뢰와 권위의 상징인 은행 창구로 찾아오는 소비자들의 보호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경기신문 = 고현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