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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누구나 고향이 있다

 

 

내 고향은 시골 농촌이다. 덕분에 좋은 자연환경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정서적으로 복된 성장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100여 가구 마을 사람들은 한국전쟁 때 모든 집과 살림이 불태워진 잿더미 위에서 다시 집을 짓고 살아낸 조상들이었다. 그래도 동산에 달이 뜨면 소쩍새는 구슬프게 울어주었고, 낮에는 넓은 밭 위로 종달새가 소리 높이 울며 하늘로 치솟았다. 정지용의 ‘향수’에 나타나듯 ‘넓은 벌 동쪽 끝으로 구림천이 휘돌아 나가 섬진강’으로 이어졌다. 그런 자연환경 속에서 경쟁을 모르고 시기 질투 없이 먹고사는 일만을 운명으로 알고 살았다.

 

반면, 문화적 삶과 문명의 정보는 한없이 뒤졌다. 하고 싶은 공부도 못했고 가고 싶은 학교에도 진학할 수 없었다. 청소년 시절 ‘수확한 촌놈’이라고 무시당하기도 했다. 운명적으로 재탄생을 생각하고 어느 도시에 머물며 개척정신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 자존심으로 인한 가슴속 출혈이 심했다. 그럴 때마다 더욱 철학적인 독서활동에 전념했다. 자기 갱신과 정신적 새로운 자아 세포 분열로써 굳건히 살아갈 수 있도록 스스로를 닦달했다. 그런 과정에서도 고향이 시골이요 농가이었다는 게 다행이라는 긍정적인 마음만은 있었다.

 

'대지'의 작가 펄 벅 여사는 한국에 와서 경주지방을 여행했을 때 지게 진 농부가 소달구지를 끌고 가는 농촌 환경을 보고 ‘고향에 온 것 같다’고 감탄했다고 한다. 더 이상 한국의 뭣인가를 보지 않아도 흡족해했다고 한다. 단순한 농촌 풍경 때문이 아니라 소달구지에 실은 볏단을 농부가 나누어짐으로써 달구지를 끄는 소를 배려한 모습이 작가를 감동시켰다는 것이다. ‘미국 같으면 짐을 나눠지기는커녕 달구지에 올라타고 처자식까지 태우고 랄랄라 노래하며 채찍질했을 것이다’고 하면서. 이기적인 인간을 만든 문명이 배제된 근본적인 정다운 풍경에 젖어든 감정을 펼 벅은 고향에 온 것 같다고 표현한 것이다.

 

2024년 정월에 왜 이런 생각을 하며 글을 쓰고 있는지- 이주 목적으로 달나라나 화성에 인공위성을 보내고 있는데 제정신인가? 하고 자문해 본다. 답은 운명이요 운이다. 그리고 누구나 고향은 있고 죽고 사는 것은 운이다. 운명과 운을 과학과 의학에서는 확률이라고 한다. 확률은 비가 올 확률이 어느 정도라고 일기예보에서도 나온다. 암 수술 후 5년 생존은 백 명 중 몇 명이라는 게 의학자들의 확률적(蓋然性)인 설명이다. 17세기나 21세기나 고독의 가장 믿음직한 동반자는 책과 자연이라는 것을 체득하며 산다. 따라서 나의 문학과 수필작품의 뿌리가 작가를 닮아 농촌이요 자연환경 속에서의 정서적 디엔에이에 닿아 있다는 게 다행스럽다는 생각이다.

 

며칠 있으면 한국인의 가장 큰 명절 설이다. 콩 한쪽도 나눠 먹고, 소달구지 몰고 가면서도 자기 지게에 짐을 나눠지던 사랑과 순박함의 정서가 배어 있는 조상들의 명절이다. 그렇다 어린 시절 나나 내 아버지는 소(農牛)를 지금 세대들의 개 사랑 못지않게 생각했다. 아침저녁으로 쇠죽을 끓여 따뜻하게 먹이며 가축(家畜)이라고 하면서 온갖 농사일을 소와 함께 해냈다. 그래서 소와 짐을 나눠지고 걸었던 것이다. 시끄럽지 않게 조용히 깊은 가슴으로 소를 사랑했다. 이것이 자발적 사랑인 것이다, 많은 분들이 고향으로 가서 부모형제를 만나 회포를 풀며 가족사랑에 흠뻑 젖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마음 밭에 아름다운 고향의 꽃씨를 심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누구나 고향은 있으며 잊을 수 없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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