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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망국(亡國)의 단초과 되었던 을사보호조약(한일신조약)이 체결된지 100년이 된다. 악명 높았던 이토히로부미(伊藤博文)는 1905년 11월 9일 보호조약 체결 강행을 위해 조선에 왔다. 그는 11월 15일 고종에게 조약안을 제시하고 수락을 강요했다. 이미 국정 능력을 상실하고 있었던 조정은 11월 17일 조약문서에 서명하고 말았다. 이 조약으로 말미암아 조선은 통감부의 설치와 외교권을 내주면서 일본의 보호국이 되고 말았다. 11월 20일 장지연이 황성신문에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이란 글을 발표하고, 11월 30일 시종무관장(侍從武官長) 민영환이 할복 자결하였으나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일본의 조선침략은 이 보다 훨씬 전부터 획책되었다. 1894년(고종 31) 10월 20일 내각 총리대신 이토히로부미는 제국의회 중의원에서 일청전쟁 선전포고에 이르는 경과를 보고하면서 일본의 세계관은 동양대국(東洋大國)의 평화를 존중하는데 있다면서 “청나라가 동양의 평화를 저해할 뿐아니라 이미 전단(戰端)을 열었기에 선전포고를 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 무렵 일본에서는 청일전쟁의 명분으로 ‘주권선(主權線])’의 수호와 ‘이익선(利益線)’의 방호를 내세워 군비 확장이 불가피하다는 괴이한 논리를 만들어 냈다. 여기서 말하는 이익선은 만주와 조선인데 훗날 이 이익선은 ‘ 생명선’으로 바뀌고 말았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러시아와의 전쟁에서도 이기고, 마침내는 이익선 방호를 완결 짓기 위해 조선 강점을 서슴치 않았던 것이다. 하나 조선 침략은 결코 동양의 평화가 되지 못했다. 오히려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면서 일본은 패전국이 됐고, 조선을 비롯한 동양의 많은 나라들은 독립국가가 됐다. 100년 전의 망국을 탓한들 울분과 수치가 씻어질 리 없다. 그러나 기억은 해야하고, 못난 과거를 교훈으로 삼을 필요는 있다. 이창식/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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